전상인의 『편의점의 사회학』 을 읽고
편의점의 사회학이라는 이름을 듣고, 처음에 든 생각은 주제를 잘 뽑았구나라는 생각이었다. 도처에 우리 주변에서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조지 리처의 말을 빌리자면, 그렇다고 역사를 갖은 그 마을의 지표라고 생각할 수 없는 편의점을 주제로 글을 썼다는 게 흥미로웠다. 그러던 중 대학생때 읽게 됐던 김애란 소설이 기억나면서 그것과 연관지어 보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웬걸 읽어보니, 전상인 선생님도 소설에서 비춰주는 편의점이라는 공간에 대해 꽤나 감명 깊게 읽힌 것 같았다. 사회학자가 아닌 모든 사람들이 사회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표현까지 쓴 걸 보면 말이다.
나에게 편의점은 어떤 의미일까? 사장님 얼굴이 기억나는 편의점이 몇 곳 있다. 그 곳은 편의점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도 없게 만드는 곳이다. 에누리도 있으며, 인정도 있고, 타인에 대한 배려도 있는 편의점 점주이다. 그런데 반면,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이 있던 공간 대신 들어선 편의점도 있다. 어릴 적 우리 집은 베이커리를 했었는 데 그 맞은편에는 슈퍼마켓이 있었다. 동네 슈퍼 치고는 큰 공간이었고 어머니, 아들내외 이렇게 집안의 2대가 장사를 이어서 하고 있었다. 코 흘리게 시절부터 갔던 곳이라 총각시절 아들이 장사를 할 때부터 결혼해서 장사를 할 때까지 봐오기도 했다. 키가 안 닿는 물건이 위에 있으면, 사장님이 나를 들어 올려 물건을 집게도 해주기도 하고 엄마 몰래 아이스크림을 사먹기도 했다가 엄마한테 혼나기도 했으며 온갖 다양한 일들이 엮인 추억의 공간이었다. 그 곳은 정드르 슈퍼라는 상호명을 갖고 있었는데, 정드르 사거리에 위치했기 때문에 그런 상호를 갖게 되지 않았나 싶다. 정드르라는 지리적 상징 지표같기도 했고 단순히 동네 사람들도 오고가는 일상의 공간이었다.
그런 슈퍼가 어느 순간부터 주인이 바뀌고, 시들시들 하더니, 올해는 편의점으로 바뀌었다. 씨유라는 편의점이 들어섰는데, 처음에는 반감이 느껴졌다. 추억이 많았던 의미있던 곳에 프랜차이점이 생기다니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부정적으로 보았던 공간이 일면 다른 의미도 있는 것은 아닌 가 싶었다. 슈퍼에는 사람들이 물건만 사고 갔는데, 그 편의점에는 사람들이 앉아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먹기도 했다. 특히 어린아이들이었지만, 훨씬 사람들이 왕래가 늘어나고 활력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조용하던 동네가 편의점이 생기네 계속 왕래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볼 수 있을 까? 나는 어떤 동네를 가서 슈퍼를 가려고 하면, 불편함을 느낀다. 한정된 물건 안에서 사야한다는 생각이 들고 선택권이 많지 않은 기분이다. 짧은 시간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하고 싶어도 김밥을 파는 슈퍼도 별로 없다. 반면 편의점은 더 많은 물건, 어쩌면 이미 어떤 물건이 있는 지 아는 물건들이 일반 슈퍼보다 많다. 이래서인지 동네 슈퍼들이 포스기를 사용하기도 하고, 다양한 방식을 구성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 기업이 뒤에 서있는 편의점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김애란의 소설에서 나는 한밤중 낯선 동네에 가거나, 이국 땅을 밟았을 때, 편의점을 발견하고 안심하는 버릇이 있다라는 말처럼, 편의점은 자본화된 사회에 길들여진 개인에게 최적의 장소이다. 데이비드 하비는 전 지구적 차원의 자본 축적 과정이 장소의 차이에 대한 자본의 민감도를 반드시 저하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했듯 오히려 한국화된 모습으로 개인들의 패턴에 맞춰 편의점은 계속해서 변화한다. 우리 시대의 유연적 자본 축적은 개인이나 집단의 장소 정체성을 오히려 부각하는 경향이 있(p.104)는 것이다. 혜자 비빔밥, 혜자 도시락처럼, 가용성 대비 편의점의 좋은 품질을 갖은 음식에 대해 은혜로운 감사의 이름을 붙이기도 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퓨전 음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위대한 떡볶이라는 브랜드가 맛있다고 입소문에 먹어보기도 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맥도날드도 그렇고, 편의점도 그렇고, 실질적인 편리성이 있다. 저자는 사용자보다는 관리자의 의미에서 편의점에 편의라는 용어가 붙였다고 하지만, 소비자가 느끼는 편리성도 반드시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편리성이 따뜻한 밥, 따뜻한 사람간의 관계보다 편의점의 가공 식품, 혼자하는 식사보다 낫다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바쁜 현대인들의 시간압박에 많은 업무, 그리고 불편한 사람과의 식사보다는 차라리 혼자서 자신의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간단한 식사를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 크지 않나 싶다.
그러한 관계는 택시를 타서 택시기사분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나는 소비자, 기사님은 가려는 공간에 데려다주시는 업무를 수행하는 관계에서 사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이상하게도 불편해진다. 아마도 그만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빨리 대화를 끝내고자 답변형의 말을 던진다던지 그런다.
그렇지만, 따뜻한 밥이 너무나 먹고 싶고, 편의점의 냄새만 맡아도 싫은 날, 그리고 맥도널드의 맛이 질리듯이.. 그것들이 갖고 있는 편리 혹은 편의가 그럼에도 계속해서 소비자의 패턴에 맞춰 변화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엄마가 해주는 밥과 다르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과 그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과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택시기사분이 건네는 말에 다시금 고마움을 표하고, 고민하다가 다시 말을 건네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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