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밖의 아이들- 삶을 뒤돌아보게 하는 거울
5가지의 책 중에서 『교실 밖의 아이들』을 주저 없이 선택했던 이유는 ‘교실 밖의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을 말하는 걸까?’라는 단순한 호기심에 있었다. 내가 만나왔던 교실 밖의 아이들 즉 사회가 말하는 문제아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주저 없이 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선택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의 본성을 들여다보면 어떤 다른 아이들보다 착하고 순수했다. 언제나 교실 안의 아이였던 나 자신에게는 교실 밖의 아이들은 때로는 부러운 대상이었고, 동경의 대상 이었다.『교실 밖의 아이들』이 상담사례집이라는 사실은 잊은 채 그저 동경해오던 일탈을 하는 아이들이 어떠한 생각과 생활을 하는지 궁금했기에 주문 단추를 망설임 없이 눌렀다.
‘공부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공부하는 것이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고, 공부를 잘해야만 선생님께 인정받을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만 가득했던 나의 학창시절. 부모님이 뜻하는 대로 선생님들이 바라는 대로 언제나 그 모습을 하기 위해서 하루하루 노력했다. 어떤 뚜렷한 목적 없이, 의미 없이 그저 어른들이 닦아주는 그 길을 그렇게 걸어왔다. ‘우등생’이란은 명찰을 달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해왔다. 때로는 이런 숨 막히는 시간들이 싫어서 사회에서 ‘문제아’라고 칭하는 친구들처럼 그런 일탈을 하고 싶을 때도 많았고, 이런 내 자신이 싫어서 도망가고 싶었던 기억도 많다. 그러나 그저 상상 속에서만 할 수 있었던 나에게는 상상속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된 가장 큰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에 있다. 부모님에게 보다 적은 짐을 짊어 드리게 하기 위해서, 그래도 계속 공부 잘한다고 인정받는 나였는데, 그런 친구들 앞에서 “교대 다니고 있어”라는 말로 자존심을 조금이라도 덜 상하게 하기 위해서, 부모님이 “내 딸 교대 다녀”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며 입가에 머금으시는 미소를 빼앗지 않으려고,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어느덧 3학년이란 명찰을 달고 있게 되었다.
아직도 나를 고뇌하게 만드는 ‘선생님’이라는 이 단어는 처음에는 단지 직업으로서의 명칭이었다. 의사, 변호사, 검사, 판사, 회사원, 운동선수 등 다양한 직업들 중 하나였다. 수많은 직업들 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의 한 종류였을 뿐이다. 어떤 교육관, 아이들에 대한 태도는 단지 시험에 몇 글자 적기 위한 암기해야 할 하나의 글일 뿐이었다. 그런데 교대라는 곳에서 1년, 2년 지내다 보니 이러한 ‘선생님’이란 단어를 바라보는 내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요즘 아이들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접하게 되고, 직접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칠 내용을 배우면서부터 나에게 ‘선생님’이란 이름이 나의 선택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교사로서의 자질을 가춘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교사라는 자리가 그저 학문적인 내용만을 전달하는 자리가 아니라 교사는 ‘아이들과 함께 숨 쉬는 사람’이라는 말이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을 보다 심도 있게 하게 해준 것이 바로 『교실 밖의 아이들』이란 책이었다. 물론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는 그저 다른 세계의 아이들이 궁금했을 뿐이었지만, 책이 얘기하는 교실 밖의 아이들의 의미와 책의 한 장 한 장이 해주는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면서, ‘선생님이란 이런 분들을 얘기하는 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아직 교사로서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나에게 조그마한 나침반이 생긴 것 같아 기뻤다. 16명의 아이들의 이야기 중에서 민우와 경민 이의 이야기와 오버랩 되었던 나의 부끄러운 경험들을 생각해 보며,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해 보도록 하겠다.
‘모두 죽여 버릴 거예요’라는 첫 말을 한 민우의 사례에 선생님께서 쓰신 상담후기 중
장애를 지닌 아이를 볼 때면 딸꾹질 행동이 떠오른다. 한 번은 교실에서 나도 모르게 딸꾹질이 나왔다. 한 번이 아니라 자꾸 딸꾹질을 하자 아이들은 킥킥 웃었다. 아이들의 시선에 얼마나 곤혹스럽던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딸꾹질이 아니건만 친구들은 딸꾹질을 놀리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 딸꾹질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상당 시간 혹은 평생 지속되고 여전히 주변의 사람들이 그렇게 본다면 얼마나 괴로울까? 장애를 지닌 아이들도 그런 느낌이 아닐까? 그런 느낌이 쌓이고 쌓일 때 이 아이들에겐 장애 그 자체보다 더 치명적인 부정적인 자아 개념으로 마음이 멍들게 마련이다.라는 선생님의 고백을 보며, 한 아이가 떠올랐다.
어릴 적부터 두 가족이 함께 여행도 다니고, 친척보다도 가까운 이웃사촌 동생이 있다. 이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고, 내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이 아이의 영어공부를 도와주게 되었다. 여행을 다니고, 함께 밥을 먹는 시간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이 아이가 어느 정도의 학업수준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공부를 해왔는지는 몰랐다. 첫 수업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분명 이제 고등학교에 올라갈 아이인데, 아이의 영어 수준은 처음 영어를 접하는 초등학생과 다름없었다. 아무리 설명을 해주어도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고, 수업을 할 때 자꾸 화만 내게 되었다. 이런 저런 방법으로 문제집 몇 권이 끝나고, 몇 차례의 시험들도 지나갔다. 당연히 그 결과는 참담했다. 아이의 어머니도 걱정이 되셨는지, 아이를 데리고 아이큐 검사 등 다양한 검사를 하셨다.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지능이 낮았다. 민우와 비슷한 검사 결과가 나왔던 듯하다. 민우의 어머니가 “그래도 아직 가능성은 있죠?”라고 물으며 아이의 현재 모습을 부인하려고 했듯이 그 아이의 부모님도 역시 그랬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아이를 지도하려 했지만, 답답한 마음에 항상 소리만 지르고, 혼내기만 했다. 그 아이의 상황을 알면서도 아이를 무시하는 말과 아이에게 상처 입히는 말도 서슴없이 한 것 같다.
수업 중 하루는 학교생활이 어떠냐는 나의 물음에 아이가 이렇게 답했다. “누나, 솔직히 말하면 초등학교, 중학교 때 까지 왕따였어. 애들이 놀리고, 때리고. 공부 못한다고 무시하고. 그런데 그래도 지금 고등학교에 와서는 친구들도 사귀고, 내 옆에 있어 줄 친구들 만나서 그것만으로도 감사해.”라는 아이의 말을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참 가슴 아픈 말이었다. 그 아이의 주변에는 민우처럼 민우만을 위해 고민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민우가 상담으로 인해서 모든 것이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의 민우의 생활에 상담이 많은 긍정적인 요인들을 이끌어 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만약, 민우에 대한 관심과 염려를 보이지 않았더라면, 나의 동생과 같은 일이 민우에게도 일어나지 않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고통의 시간을 계속해서 짊어지고 가야했을 것이다. 선생님의 마지막 말처럼, 나의 말과 행동들이 혹시 그 아이에게 마음의 멍을 더 크게 만들지 않았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경민 이의 이야기 역시 나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막내 이모도 어쩔 수 없이, 이혼을 하셨다. 아이들이 어릴 때 아이들을 돌봐줘서 그런지는 몰라도 다른 친척동생들 보다 두 아이는 나에게 특별하다. 그래서 항상 아이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학교는 잘 다니고 있는지, 공부는 잘 하고 있는지 두 아이의 엄마처럼 신경이 많이 쓰인다. 우리 집과 가까이에 이모가 사시기 때문에 자주 이모 집에 들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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