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나르시시즘의 어원
그리스 로마 신화에 강의 신 케피소스와 요정 리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난 나르키소스. 아름다운 그를 한번 본 처녀는 누구나 다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으나, 나르키소스는 제아무리 아름다운 소녀라 할지라도 거들떠 보는 법이 없었다. 숲의 여러 요정들 중에사 가장 아름다운 에코가 그를 좋아하며 뒤따라 다녔지만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에코는 너무나 골똘히 나르키소스를 생각하고 있는 나머지 여신 헤라의 비위를 거슬리고 말았다. 여신이 바람둥이 남편 제우스의 행방을 물을 때, 정신이 딴 데 팔려 있던 에코는 엉뚱한 대답을 하고 말았다. 여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 "이제부터는 수다를 떨지 못하게 남이 하는 말의 끝부분만 되받아 말할 수 있게 만들어 줘야지."
그 후부터 에코는 자유로이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여신이 말한 것처럼 남이 말한 끝부분만을 되풀이할 수 있을 뿐이었다. 나르키소스를 뒤쫓아다녀도 말을 걸 수 없었다. 이젠 상대편의 마음을 끌기란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없는 기회가 왔다. 나르키소스가 숲 속에서, "거기 누가 있어?" 하고 불렀던 것이다. "있어. 있어!" 하고 에코는 나무 그늘에서 정신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나르키소스는, "누구냐? 이리 와" 하고 불렀다. 에코도 기뻐하며, "누구냐? 이리 와" 하고 나무 그늘에서 뛰어 나왔다. 그러나 나르키소스는 "난 또 누구라구. 너 따위와 같이 어울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하며 획 돌아서고 말았다. 에코는 슬프고 또한 부끄러웠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가느다란 소리에 말하고는 쓸쓸히 동굴 속에 몸을 숨기고 말았다. 그리고 굴 속에 들어 박힌 채 슬퍼만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야윌대로 야윈 나머지 마침내 소리만 남게 되었다.
한편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는 나르키소스가 남은 사랑할 줄 모르는 것에 화를 내었다. "남을 사랑할 줄 모르는 자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 네메시스의 저주의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물을 마시려고 샘가에 웅크리고 앉은 나르키소스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자 온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리고는 마참내 그 자리를 떠나는 것도 잊고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쓰러져 버렸다. 에코는 실같이 야윈 몸으로 동굴에서 나와 나르키소스의 곁으로 왔으나,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다만 나르키소스가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여, 안녕!" 하고 말했을 때 에코도 슬픈 목소리로 "안녕!" 하며 마지막 말을 되풀이할 수 있을 뿐이었다. 나르키소스는 마침내 죽었다. 마음씨 고운 요정들은 평소에 나르키소스가 거들떠 보지도 않던 것을 잊고 이 아름다운 젊은이를 묻어 주기로 했다. 그러나 요정들이 샘가에 와 보니, 나르키소스의 모습은 간 데 없고 쓰러졌던 자리에 이름 모를 아름다운 꽃이 피어 있었다. 그리하여 모두들 이 꽃을 나르키소스(수선화)라 부르기로 했다.
2. 나르시시즘의 정의
자기의 육체를 마치 성의 대상처럼 다루어서 성적 쾌감을 품고 이를 바라보며 어루만지며 애무하여 마침내 완전한 만족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1899년 폴 나크(Paul Nacke)가 사용한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이 널리 알려진 것은 S.프로이트가 이를 정신분석 용어로 도입한 뒤부터이다. 그에 의하면 자기의 육체, 자아, 자기의 정신적 특징이 리비도의 대상이 되는 것, 즉 자기 자신에게 리비도가 쏠려 있는 상태이다. 보다 쉽게 말하면 자기 자신이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정신분석에 따르면 유아기에는 리비도가 자기 자신에게 쏠려 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이 상태를 1차적 나르시시즘이라고 하였다. 나중에 자라면서 리비도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나 외부의 대상(어머니나 이성)으로 향한다. 그러나 애정생활이 위기에 직면하여 상대를 사랑할 수 없게 될 때, 유아기에서처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상태로 되돌아간다. 이것이 2차적 나르시시즘이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열병이나 파라노이아는 극단적인 예라고 생각하였다.
3.나르시시즘의 패러다임들
1)Paul Nacke(1899)
- 자기 자신을 성적 대상으로 다루어 성적 쾌락을 느끼려는 것을 표현하는 일차적 표면적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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