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당 홍씨 유한당 홍씨 약력 유한당 홍씨 사회적 배경 유한당 홍씨 가족적 배경
1. 약력
유한당 홍씨 (1791 ~ 1850년 전후), 이름은 홍원주(洪原周)이다. 조선 순조, 헌종 때의 시인으로 관찰사였던 아버지 홍인모와 역시 여류시인인 어머니 영수합 서씨의 3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나 청송심씨 가문의 심의석과 결혼했다. 저서로는 『유한집 (공인홍씨시집)』이 있는데 175제의 시가 수록되어 있으며, 홍원주의 사후 아들 심성택이 사위인 이대우의 서문과 함께 엮어 책으로 펴낸 것이다. 이대우가 서문을 쓴 때가 1854년이라는 점으로 보아 홍원주의 사망 시기는 그 몇 해 전인 1850년경으로 추정된다.
2 - 1. 사회적 배경
홍원주가 살아있던 조선 후기는 사회적으로 사대부계층이 경화벌열층의 상층양반과 간신히 그 신분을 유지하던 향촌사족층으로 분화되었던 때이다. (여기서 경화벌열층이란 오늘날의 서울, 그리고 그 근교를 행정적인 중심지로 하여 주도세력을 쥐고 있던 계층을 말한다) 홍원주는 영수합 서씨와 함께 경화벌열층에 해당하는 여성작가였다. 따라서 정일당 강씨와 같은 경화사족층이나 삼의당과 같이 하층사족에 속한 작가들과 그 생활상이 매우 다를 수밖에 없었고 이는 홍원주의 시에서도 그 맥을 찾아볼 수 있다. 이혜순, 한국 고전 여성작가 연구,
그런 까닭에 이들은 매우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으며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고 따라서 그들의 시 또한 공적 서정의 실현을 넘어서 그들의 자의식과 정신세계를 드러내는 양상을 띈다.
그 시기의 양반가 여성들은 여러 규범적인 제약을 안고 있었으나 가정 내에서 가족끼리 시를 주고받는 등의 창작의 기회는 존재했다고 한다. 홍원주의 경우 아버지인 홍인모가 영수합 서씨와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시 짓는 것을 큰 낙으로 여겼던 덕에 일찍부터 시를 지을 기회를 누리며 자라났다. 그러나 이 시대는 한자의 사용 자체가 여성들에게 쉽게 용인되지 않는 것이었고 따라서 여성이 한시를 창작한다는 것은 공식적으로는 허락되지 않는 풍토였다.
2 - 2. 가족적 배경
여성 한시작가들의 여러 신분적인 배경에 있어 홍원주는 영수합 서씨와 함께 관리 집안의 여성으로 분류할 수 있다. 홍원주의 외조부인 서형수는 강원도 관찰사와 이조참판을 지냈으며, 아버지인 홍인모 역시 관찰사였다. 그런 까닭에 영수합 서씨는 남편의 직업상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시로 표현하기도 했으며, 관인의 아내답게 아이들에게도 유교정신을 중시할 것을 강조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영수합 서씨는 수리학에도 정통했던 인텔리 여성으로 이와 같은 집안의 학식이 홍원주에게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홍원주의 집안 특징 중 두드러지는 것이 차를 즐겼다는 것인데, 첫눈이 오는 날이나 매화가 필 무렵이면 가족이 함께 야외로 나가서 시와 차를 즐기곤 했다고 한다. 그리해서 영수합 서씨와 홍석주, 원주, 길주 그리고 홍석주의 부인인 숙선옹주가 지은 차시만 해도 2백 50수나 된다. http://www.chorong.com/te86.htm
이 겨울에 너 홀로 봄을 맞았니? 獨擅春光早,
성긴 가지 끝엔 달빛 푸른데, 疏枝帶月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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