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무현은 왜 링컨을 만났을까?
노무현과 링컨 두 사람의 삶과 그들의 리더십은 유사한 점이 매우 많다. 사상적인 측면에서는 노무현이 링컨을 본받고자 한다. 그러나 노무현이 처음부터 링컨에 자신을 비유하려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노무현 스스로 「노무현이 만난 링컨」에서 말했듯 2000년 4월 13일에 총선 개표 때에서야 링컨의 연설문을 읽고 감동을 받은 후에 링컨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노무현은 링컨을 읽으면서 서서히 자신과 닮은 점을 느꼈을 것이다. 노무현은 링컨에 대해 알아 가면서 링컨이 정의와 원칙을 지키면서 연방의 유지와 노예제의 해방이라는 큰 일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이루어 낸 것을 보고 자신도 정치 인생에서 가장 중요시한 동서통합이라는 신념을 실현시키고 결국은 성공할 것이라는 꿈과 희망을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옳다는 것이 패배하는 역사를 가지고 이런 역사를 반복하면서 아이들에게 옳은 길을 가라고 말하고 정의는 승리한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공허한가?“ 노무현이 만난 링컨 p.16
라고 생각하면서 ‘정의가 승리한다’는 희망을 제시한 사람을 링컨이라고 보았다. 노무현은 자신의 소망과 정치를 하는 이유를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과 정정당당하게 승부 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 인간이 자존심이 활짝 피는 사회, 원칙이 승리하는 역사를 이루고 그것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희망을 원칙과 정의를 지키면서 제시한 사람이 링컨이고 노무현 자신도 이를 실현시킬 수 있을 거라고 믿게 된 것 같다.
또 리더십의 차원에서 보면 둘 다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고 낮은 권력을 이야기하며 수평적이고 개방적이며 자율적인 지도력을 보인다. 링컨은 이러한 리더십으로 남북전쟁의 승리와 연방의 통합, 그리고 노예 해방을 이루어 내었고 노무현은 이러한 지도력만이 남북 분단을 극복하고, 지역갈등과 계층 대립이 만연한 우리 사회의 고질을 치유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위의 책 p.15
선거를 하는데는 이미지가 중요하다. 경선 기간에 이인제나 정동영이 각기 클린턴과 블레어를 벤치 마킹 했지만 확실한 이미지를 심어주지 못한 반면에 노무현은 링컨을 벤치 마킹 하는데 성공했다. 자신의 리더십이 대화와 포용을 중요시한다고 알리면서 자신을 링컨의 이미지로 선전했다. 벤치 마킹의 한 예를 보자면 대선 후보 당시 노무현의 홈페이지에서 노무현과 링컨이라는 이름의 플래시 애니메이션으로 링컨의 삶만 보여 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YOU CAN DO IT이라는 글자가 뜬다. 직접 비교는 아니지만 자신도 정치적 실패를 거듭했다는 점과 결국에는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노무현은 2000년 4월 13일 링컨과의 충격적 만남 이후 링컨이 단지 뛰어난 정치인이 아니라 고귀하고도 위대한 사상가이자 정치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노무현이 굳이 다른 위인이 아닌 링컨을 선택한데는 자신이 계속 지켜온 원칙과 소신에 대한 희망을 링컨에게서 찾아 자신이 추구하는 정의와 원칙을 실현시키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번 레포트에서는 노무현과 링컨의 삶의 유사성과 그들의 리더십이 밖으로 표출되어 온 예를 서로 비교하고 앞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어떻게 하면 5년을 성공 할 수 있을지 말해 보기로 하겠다.
2. 노무현과 링컨의 생애 비교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
나는 노무현이 자신과 링컨이 비슷한 점이 많다고 한 것은 제일 먼저 자신이나 링컨이나 살아 온 배경이 비슷한 것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선 리더십을 떠나서 노무현과 링컨의 생애를 비교해 보자면 노무현은 가난한 농부의 집안 출신에다가 학벌위주의 한국에서 부산상고를 졸업한 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공부를 거의 독학으로 하다시피 해서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변호사라는 직업을 가졌다. 탁월한 논쟁으로 정가에 이름을 날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2년 총선 낙선, 1995년 부산시장 낙선, 2000년 총선 낙선 쉬운 길, 탄탄대로를 포기한 그는 거듭 낙선을 했다. www.knowhow.or.kr 노무현 이야기
그러다 마침내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이 되어서는 북핵이라는 민족적인 문제를 안고 있고 자신의 반대 세력인 야당과 일부 언론 그리고 지금까지의 기득권 세력들에게 공격당하고 있다.
링컨을 보면 그는 정치의 중심지인 동부에서 태어나지 못했다. 당시로서는 변방인 서부의 가난한 개척자 집안 출신이었고 변변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였다. 그는 어려운 형편에서 생활비를 쪼개 거의 독학으로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정치를 하지 않을 때는 언제나 순수하게 변호사일로만 살았다. 그는 청중들 앞에서의 뛰어난 언변으로 유세를 했다. 그러나 링컨도 정치적으로 순탄하지 못했다. 휘그당과 공화당을 거치며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복잡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1832년 주 의회 선거 낙선, 1844년 연방 하원 의원 공천 실패, 1849년 국토관리 청장직 신청 실패, 1855년, 1858년 연방 상원 의원에 낙선하였다. 결국 1860년에 대통령에 당선된다. 당선되어서도 자신이 임명한 장관이나 장군을 해임할 수 있을 정도의 권력이 없었고 연방의 분리냐 유지냐를 결정 할 남북전쟁을 치르는데 대통령으로서 전체적인 권한을 가질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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