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 마리아처럼 요한복음 12장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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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설교문 - 마리아처럼 요한복음 12장 1-8절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 성경: 요 12: 1-8
- 제목: 마리아처럼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조선인민군이 38선을 넘어 남한을 침범하여 한국전쟁이 발발합니다. 갑자기 일어난 전쟁으로 온 나라가 삽시간에 혼란에 빠집니다. 사람들은 서둘러 남쪽으로 남쪽으로 피난을 가기 시작합니다. 고향에서 겨우 몸만 빠져나온 피난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하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전쟁의 상처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불구덩이 속에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삶을 포기한 채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그리스챤들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심지어 믿음을 버리는 사람까지 생깁니다. 그러나 그런 고난 중에 하나님의 섭리를 구하며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우리는 신앙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새벽마다 하나님께 울며 매달립니다. 피폐해진 환경과 믿음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안개와 같이 잠시뿐인 이 세상의 고통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다가, 영원한 고통을 겪게 된다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1952년 울산중학교 국어교사였던 26세의 젊은 석진영은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며 펜을 듭니다. 석진영은 글로써 절망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탕자처럼 방황하는 이들에게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길 애타게 호소합니다. 그렇게 쓴 글이 바로 좀 전에 부른 찬송가 515장 “눈을 들어 하늘 보라”입니다.
이 찬송은 전쟁을 겪는 암울한 시절이지만, 하나님의 참 사랑을 모르는 자들과 주님을 떠난 자들에게 빨리 돌아오라는 강렬한 외침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환난 가운데서 땅의 현실만을 바라보고 있는 피난민들에게 시편 121:1-2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음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음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말씀처럼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또 마지막 행의 가사마다 “믿는 자여 어이할꼬”라는 직설적인 질문으로 신앙인들에게 주님의 뜻을 따라 결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 가사에 그의 간절함이 절절합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지 63주년이 되었습니다. 며칠 전 뉴스를 보니 6.25 전쟁이 일어난 년도를 "성인 36%, 중고생 53%" 가 모른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 북침인지 남침인지도 모르는 학생들도 많다고 합니다. 날짜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날짜는 모를 수 있죠! 하지만 날짜도 모르고, 그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누가 시작했는지도 모른다면, 거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를 포함한 젊은 세대는 전쟁의 참상을 모릅니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죽어 간 선혈들과 그 가족의 고통을 모릅니다. 그 심정은 모르지만, 그 사실, 그 역사적 사실은 가슴에 깊이 새겨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어지러운 세상이지만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고 외쳤던 젊은 교사의 시처럼, 현재도 역시 영적으로 어지러운 세상이지만, 주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은 눈을 들어 하늘을 보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주님께 드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본 여인이 있습니다. 그 여인의 동생은, 나사로인데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려주신 그 은혜에 감사하여, 그 사랑에 보답하고자 자신의 전부를 드린 여인, 마리아가 등장합니다.
마리아와 만나시기 전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오십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의를 하고, 제자 중 한명을 이용해 예수님을 잡으려하는 사실을 다 아시면서도, 유월절 엿새 전에, 예루살렘과 가까운 마을 베다니 - 예루살렘과 오리(2km)정도 떨어진 마을 - 에 도착하십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6장과 마가복음 19장에도 동일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머무시는 집이 나병환자 시몬의 집이라고 나옵니다. 즉 문둥병이 나은 시몬과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가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잠시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과 나사로는 앉아서 대화를 하고 있고, 마르다는 오늘도 여전히 음식을 만들고, 일을 하느라 분주합니다. 지난번에 예수님께 왜 나만 일하게 하시고, 마리아는 말씀만 듣게 하냐고 따졌었죠! 그때 주님은, 마르다의 불만에 찬 말씀을 듣고, ‘마리아의 행동이 족하다’라고 마리아의 손을 들어주셨습니다. 자, 그럼, 마리아는 어디에 있나요? 아 여기에 있네요! 바로 예수님의 발밑에 있어서 보이지 않았나 봅니다.
아니!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마리아가 갑자기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붓는 것이 아닌가요? 이런! 거기서 그치지 않고 마리아는 자기의 긴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기까지 합니다. 주변에 있던 모두가 놀라고 당황했지만, 예수님은 놀라지 않으시고, 마리아의 행동을 지켜보십니다. 마리아는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의 발을 자신의 머리로 정성스럽게 닦습니다. 그리고 집 안은 온통 향유 냄새로 가득하게 됩니다.
여러분! 나드 향유는 히말라야 산에서 나는 나드라는 식물에서 추출한 향유입니다. 즉 인도에서 수입되는 향유이니 값도 비싸고 아주 귀한 향유입니다. 마리아는 그동안 예수님을 따르면서 예수님께 받았던 사랑과 더불어, 동생인 나사로를 살려주신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감사를 표시한 것입니다. 또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에 바른 향유를 닦았다는 것은, 역시 마리아의 정성을 표시하는 최고의 방법이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