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킬링필드 진실과 재해석 캄보디아 민중학살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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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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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킬링필드’ 진실과 재해석
-캄보디아 민중 학살을 중심으로
프롤로그
왜 우린 킬링필드를 다시 봐야 하는가?
캄보디아 여행 시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가족관계를 묻는 것은 실례라는 말을 들었다. 미국의 폭격과 크메르 루즈의 만행, 베트남의 침공 등으로 캄보디아 사람 중에 가족이 다치거나 죽지 않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간이 지나 상처는 아물어 가지만 그들 민중의 죽음은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 속에 남아있어야 한다. 그게 누구에 의해 일어났느냐도 중요하고 또 어떤 식으로 자행되었는지도 중요하지만 어쨌든 민중은 죽어갔고, 민중은 이를 극복할 힘을 가지지 못했다. “론놀은 우리를 폭격하고, 폴 포트는 우리를 죽였으며 베트남은 우리를 굶겨 죽이고 있다.” 「라오스 캄보디아」 7장 캄보디아 문화와 역사 p.171 한국외대출판부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 시에 회자된 얘기다. 우린 단순히 킬링필드를 공산주의의 잔인한 만행으로만 이해해 봐서는 안 된다. 캄보디아 민중의 수많은 피는 그것을 원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킬핑필드의 이해를 통해서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피의 역사를 되짚어 봐야한다.
영화 ‘킬링필드’
1984년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흥행작으로 불리는 영화 ‘킬링필드’가 개봉된 이후 우리에게 킬링필드는 하나의 신화로서 자리잡았다. “폴 포트가 이끈 크메르 루즈”,“200만명”, “공산주의 체제 건설한답시고” 라는 킬링필드의 논리는 당시 반공이데올로기에 가장 적합한 선전수단이었고, 학생들의 단체 관람으로 왜곡된 역사의식을 충분히 주입하였다. 1997년 이후 국제사회에서 킬링필드 학살범의 재판 문제가 제기되었고, 이는 영화 ‘킬링필드’를 다시 봐야하는 이유를 충분히 갖게 하였다. 75년에서 79년의 크메르루즈에 의해 자행된 학살에 대한 죄가로 ‘이엥 사리’를 처벌해야한다는 논리는 현 캄보디아 실권자인 훈센에 의해 저항에 부딪힌다. 이유는 그가 캄보디아 내전과 민중학살 과정에서 69년부터 73년의 미군 폭격 부분도 추가해야한다는 논리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 ‘킬링필드’는 실제 캄보디아에서 활동한 서방세계의 종군 기자들 사이에서도 역사적 왜곡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부분적 흔적을 통해 킬링필드의 진실을 찾아보는 것 또한 유용하다고 생각된다. 영화 ‘킬링필드’의 재해석을 통해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량학살 현장의 진실을 찾아보도록 하겠다.
‘킬링필드’의 조작적 정의
일반적으로 알려진 킬링필드는 1975년부터 79년 사이에 크메르 루즈 정권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만을 이야기한다. 이 때 희생된 민간인 숫자는 연구 기관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1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에 버금갈만한 60만 명의 민간인이 1969년부터 1973년 사이에 미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제3차 인도차이나 전쟁으로 인한 베트남의 크메르 루즈 세력 소탕과정에서 발생한 기아 정책으로 사망한 캄보디아 민중의 수도 상당하였다. 그래서 우리 조는 기존의 킬링필드라는 용어를 재정의해 미군의 폭격에 의한 희생을 제 1기 킬링필드로, 크메르 루즈에 의해 자행된 학살을 제 2기 킬링필드로, 1979년 베트남 침공으로 야기된 피해를 제 3기 킬링필드로 정의하고 각 시기별 실상과 발생 배경들을 살펴보겠다.
제 1기 킬링필드-미군의 폭격
1969년 ~ 1975년
1969년 3월 18일 미국은 비밀리에 캄보디아 영토에 대해 폭격을 시작한다. 작전명 “Menu"의 이 폭격 작전은 최초의 공격인 “Operation Breakfast" 이후 Lunch, Snack, Dinner, Dessert, Supper의 순으로 진행되었고 1973년 5월까지 B-52 전략 폭격기가 총 3,630회 출격하며 총 54만 톤의 폭탄을 투하했다. http://compassion.buddhism.org/main2/0406.htm
공습에 의한 성과가 미미하자 1970년 4월 미군과 남베트남군은 캄보디아 국경 지역에 대해 침략(invasion)을 감행한다. Microsoft Encarta Encyclo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