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이란과 미국과의 관계
Ⅲ. 이란과 주변 국가 간 관계
Ⅳ. 맺음말
Ⅰ. 머리말
이란은 시아파의 종주국으로서 중동에서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핵 협상이 타결이 되면 더욱 이란이라는 나라가 국가적으로 중요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이란과 미국, 그리고 주변 국가들 간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알아보려고 한다. 그리고 국가 간에 커다란 사건들까지 다룰 것 이다. 이란과 미국, 이라크의 관계를 크게 다루고, 나머지 이집트,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이스라엘의 관계를 알아보겠다.
Ⅱ. 이란과 미국과의 관계
먼저 이란과 미국과의 관계변화를 연표로 간략하게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1953년 미국이 모사데크 총리를 축출하는 군부 쿠데타를 지원하는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은 자국과 협력하기 보다는 민족주의 노선을 내세우며 독자적인 노선을 걷고자 하는 모사데크를 총리자리에서 끌어내리려고 했다. 모사데크는 1951년 민주선거를 통해서 총리직에 당선됐다. 그는 자국 석유를 독식하고 있던 영국회사를 일방적으로 국유화하는 등 민족주의 정책을 고수했다. 당시에 이란 국민들은 왕이었던 무함마드 레자샤보다 더 열렬히 지지하였다.
CIA와 영국의 정보기관이었던 M16의 지원을 받은 무함마드 레자샤는 모사데크를 해임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모사데크 대신에 그의 측근을 총리직에 앉히려고 했다. 그러나 오히려 거센 반발에 밀려서 무함마드 레자샤는 이라크를 거쳐 이탈리아로 망명을 한다. 그러다 당시 CIA는 포기하지 않고, 파졸를라 자헤디 장군을 앞세워군사쿠데타를 시도해서 성사시킨다. 무함마드 레자샤는 망명한 지 7일만에 다시 이란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란은 이때부터 중동에서 미국과 그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이란 국민의 상당수는 미국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미국은 석유뿐 아니라 소련을 견제할 전략적 국가로 이란이 꼭 필요했었고, 1955년 미국은 영국, 이라크, 파키스탄, 터키, 그리고 이란으로 구성된 바그다드 조약기구를 결성해서 대 소련 방어망을 구축을 했다.
그러나 굉장히 좋았던 양국의 사이는 1979년 이슬람혁명을 시작으로 안 좋아지기 시작한다. 이슬람혁명이 발생한 지 9개월 후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사건이 발생하면서 두 국가사이의 관계는 완전하게 단절이 된다. 1980년 이란 이라크 전쟁이 나게 되고 이때 미국은 이라크를 원조를 한다. 1997년 하타미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관계가 조금 풀리다가 이란 내의 보수파들에 의하여 다시 멀어졌다. 2002년에는 부시대통령이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더욱 상황이 악화되고 2008년에는 유엔안보리에서 이란제재강화를 들어갔다. 이렇게 계속 미국을 중심으로 제재를 가하던 중에 2009년 오바마가 이란과의 관계를 개선한다며 나서고 현재 이란 핵협상이 진행 중이며 서서히 관계가 회복되고 경제적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이란관계의 핵심이었던 이슬람혁명과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사건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겠다.
※ 이슬람혁명
이란 이슬람 혁명(페르시아어: , 영어: Islamic Revolution) 또는 이란 혁명(영어: Iranian Revolution of 1979)은 1979년 이란에서 발생한 혁명으로 입헌 군주제인 팔라비 왕조가 무너지고 이슬람 종교 지도자가 최고 권력을 가지는 정치체제로 변화되는 결과를 낳은 사건이다. 팔레비 왕조 시대에 근대화를 추진하던 도중 소수의 특권계층을 제외한 국민들을 탄압하고, 종교활동까지 제한하면서 많은 지식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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