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열강과의 수교와 한국 구미 열강 수교 소개, 구미 열강 수교 조사
Ⅰ. 서론
Ⅱ. 본론
1. 구미 열강과의 수교
2. 청의 속박 강화와 한영신조약
3. 한러조약의 수립과 그 배경
4. 갑신정변과 ‘한러밀약’
Ⅲ. 결론
Ⅰ. 서론
1880년대에 이르러 한반도를 둘러싸고 여러 열강들 중 특히 러시아와 영국의 대결이 본격화되어간다. 우리는 여기에서 여러 구미 열강들과의 수교와, 청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그릇된 외교의 결과물인 한영신조약, 그리고 후의 러시아와의 수교와 ‘한러밀약’을 살펴봄으로써 영국을 비롯한 여러 열강에 이어 러시아가 한반도를 둘러싼 각축에 본격적으로 개입되는 과정을 보고, 이들이 한반도의 정세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고자 한다.
Ⅱ. 본론
1. 구미 열강과의 수교
1850년대부터 한국에 관심을 가져왔으나 러시아를 자극하는 것이 두려워 자중하던 영국은 1880년대로 접어들면서 지금까지의 자중정책을 청산하고 한국과 수교하기로 한다. 하지만 영국은 끝까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미국을 내세운다. 이는 러시아가 한반도로 진출할 것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국 땅에서 러시아와 대결하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당시의 미국으로서도 난파선 구제와 시장 개척의 필요에서 한국과의 수교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대청무역의 중간 거점으로 한국과 일본을 이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미국은 먼저 일본의 도움을 받아 한국과의 수교를 추진하려 하였지만, 한반도에서의 자국과 경쟁하게 될 것을 꺼린 일본이 성의를 보이지 않자 청국의 이홍장에게 주선을 의뢰한다. 청국이 이와 같이 한미수호통상조약의 주선을 자청한 데는 미국과 영독을 한반도 내로 끌어들여 러시아와 일본을 견제하고 자국의 전통적 속방이었던 한국에 대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데 목적이 있었다. 이는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는데 주력했던 영국의 정책과 맞물려 영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에 미국은 한국과의 조약에 앞서 청국과 회담을 하게 되는데, 한국이 청의 속방이라는 조관에 대해 양국의 이견이 있었다. 청은 수교 알선의 대가로 자국의 한국에 대한 종주권을 승인받고자 했고 미국은 이에 반대한 것이다. 결국 나중에 한국의 왕이 한국은 예전부터 중국의 속방이었지만 내정과 외교는 자주라는 통보를 미국 측에 하기로 하는 조건으로 미국의 의견이 관철되고 1882년 5월 청의 마건충과 정여창이 입회한 가운데 한미조약이 맺어진다. 한미조약은 거중조정, 아편무역 금지, 높은 관세율 등 눈에 띄는 점이 있지만 결국 치외법권, 최혜국대우까지 보장해준 불평등조약이었다. 또한 한미조약이 한국이 독립국임을 확인시켜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한반도에서 전통적으로 세력이 강했던 청에 대한 종주권을 부인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일본의 입지를 강화시켜주는 셈이 되었던 점에서 강화도조약에서 일본이 주장한 한국의 독립과 다를 것이 없었다.
한미조약의 성립은 유럽 열강이 노리던 한국 진출의 문호를 여는 계기가 된다. 이후 잇달아 한영수호통상조약(1882년 6월)과 한독수호통상조약(1882년 6월)이 체결되고 짧은 시간동안에 한국은 열강의 진출무대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청국이 추진한 러시아를 미국, 영국, 독일 등 열강으로 견제하려던 ‘이이제이’ 정책이 성공하는 듯 보였으나, 1882년 7월 한국에서 임오군란이 일어나면서 이런 기대는 무너지게 된다. 미영독과의 조약이 아직 비준도 되기 전에 군란이 일어나 혼란한 한국 내 정세가 더 유리한 조건의 수교를 노렸던 영국과 독일에게 비준을 거부하고 새로운 조약을 강압할 수 있는 호기를 마련해주었던 것이다. 즉 임오군란으로 인해 혼란한 한국 정세는 마치 청의 태평천국의 난의 경우처럼 열강들에게는 더욱 노골적인 침략의 기회가 되었다.
2. 청의 속박 강화와 한영신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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