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나님 이야기에 대하여
서론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 내용이 쉬운 것이라면 많은 학자들이 하나님 이해에 대해 그렇게 논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에,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나는 하나님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나의 어린 시절부터 청소년, 신학생이 되고 나서, 군인이 되어서, 그리고 현재 내가 이해하고 있는 하나님에 대해 적어 보려고 한다. 내가 이해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아울러 나의 삶의 방향성을 또한 생각해 보고자 한다.
본론
1.어린 시절의 하나님 - 나에게는 멀리, 하나님에게는 가까이
나의 어린 시절, 어렴풋이 유치부 때에 여름성경학교에 가던 일이 생각난다. 새벽 6시에 일어나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던 작은 발걸음에 과연 하나님이 누구인지에 대한 생각이 있었을까?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저 아버지 보다 좀 더 무서운 분, 교회학교 선생님들 말대로 세상을 창조하신 분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참 많은 기도를 했었다. 원래 겁이 많은 탓이었을까? 학교와 교회를 오가며 나는 수없이 "나를 지켜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 때 나에게 하나님은 전지전능, 무소부재 막강한 힘과 권력을 가진 그런 하나님이었다. 그렇게 위대하면서도 무서운 분이었지만 그분은 나를 사랑하셔서 내가 하는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었다. 내가 알 수 없는 곳, 저 하늘 넘어 그 어딘가에서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을 세밀하게 관찰하시는 분(성경에는 머리카락까지도 세신 바 되었다고 한 것처럼)이었다. Karl Barth가 말한 초월적인 하나님, 전적인 타자로서의 하나님으로 이해한 것 같으나 그 하나님의 존재는 나와 많이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그분이 너무나 멀리 계신 분이지만 그분에게 나는 너무나 가까이 있는 한 존재였다. 2차원의 세계(공간이 아닌 앞뒤좌우만 보는)에 사는 개미에게 있어 돌 위에 올라가 있는 나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존재일 것이지만 나는 개미가 볼 수 없는 곳에서 그 개미를 세밀히 볼 수 있다. 이처럼 내가 수없이 드린 기도 속에는 어딘가 내가 알 수 없는 곳에서 항상 나를 보고 계신 그 분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2.청소년시절의 하나님 - 성경의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중고등학교를 지내면서 나는 부잘 것 없이 작은 지식이지만 하나님에 대해 많이 배우게 되었다. 설교시간에 목사님으로부터 그리고 성경공부를 통하여, 그리고 주위에 같이 신앙생활을 하는 친구들과 함께 하나님에 대해서 듣고 또 이야기하였다. 내가 성경을 통해 느낀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죄를 싫어하시는 분이셨다. 얼마나 죄를 싫어하시는가 하면 사랑하는 독생자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가면서 까지도(?) 싫어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셨다. 죄를 절대로 두고 참을 수 없으신 분, 우리에게 철저한 회개와 예배를 요구하시는 분이셨다.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했던 임원직을 포함한 여러 가지 교회에서의 활동은 나에게 기쁨이면서 또한 억압이었다. 나는 무언가 일을 해야 한다고 느꼈으며 또한 전도라는 것에 대한 심판 압박을 느꼈다. 이는 다름 아닌 성경을 배우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바가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경이 증거 하는 하나님은 의롭고 완전하면서 우리에게 하나님처럼 거룩하게 살 것을 요구하는 하나님이었다. 헌금, 예배, 기도생활, 전도 모든 것에서 하나님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요구하시는 분이었다.
1,2차 세계 대전 속에서 그리고 아우슈비츠 속에서 신학자들 특히 본회퍼나 무신론적 신관을 가진 신학자들은 인간의 고통에 대해 초월한 곳에서 침묵하고 있는 하나님을 부정하고 우리와 함께 고통 당하는 하나님만이 우리를 도울 수 있음을 말하고자 하였다. 중고등학교 시절 나의 가정에는 아버지의 병으로 인해 커다란 고통이 찾아왔다. 매일 아파서 신음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많은 기도에 답하지 않고 침묵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많은 답답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신뢰로 인해 기다릴 수 있었다. 그 때 내가 가지고 있던 희망은 성경에 근거에 있었다. 38년 된 병자를 열 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알던 여인을 쉽게 고치시는 하나님은 오늘도 동일하게 십 년이 넘도록 고생하는 나의 아버지를 능히 치료하실 수 있으며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덕에 나는 아버지가 임종하시기 바로 직전까지도 조금의 의심도 없이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었다.
가끔 아버지는 본 정신이 아닐 때 하나님을 원망했다. “엄청 기분 좋겠다” 이 말에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신뢰와 자신의 고통에 침묵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의문이 들어 있었다. 왜 나에게 고통을 주는가? 도대체 내가 아픔으로서 하나님이 좋은 것이 무엇인가? 좋은 것이 없다면 왜 나의 고통에 침묵하시는가?
아버지의 고통 앞에 나는 성경의 하나님을 의지했다. 나에게 이런 저런 많은 것을 요구하시지만 그래도 나를 위해주시는 분, 위로와 기쁨을 베푸시는 분, 하나님은 그런 분이셨다. 병석에 누워 아무 것도 나에게 해줄 수가 없는 아버지 대신에 하나님은 그 빈자리로 들어오셨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이기적인(아버지라고 하지만 나의 고통이 아니므로) 생각으로 인식할 수 있는 하나님이었다. 내가 아버지라면 본 정신으로도 원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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