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신학, 해방신학, 여성신학 -한국기독교의 역사3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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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신학, 해방신학, 여성신학 -한국기독교의 역사3을 중심으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민중신학, 해방신학, 여성신학
-한국기독교의 역사3을 중심으로-
항상 이런 고민을 해왔다. “지금의 한국교회가 어떠한 시대적 요청을 받고 있는가.. 앞으로 한국교회는 어떠한 모습으로 세상에서 소금과 빛으로서 긍정적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을까...역사 속에서 그러한 롤모델은 없었을까? 그렇다면 지금부터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것인가?” 라는 고민이었다.
지금도 앞에서 말한 고민들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공부하고 자료를 찾아보고 대안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민중신학과 해방신학, 여성신학의 짤막한 글들을 읽어보며 한가지 힌트는 얻었다. 한 가지 공통점들이 있었다. 이 세가지 신학이 모두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상황적 배경이 있었다는 것이다. 민중신학은 70년대 이래 인권운동과 민주화운동의 붐이 일어나면서 이것을 신학화 하였다는 점이고, 해방신학 또한 60~7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상황, 즉 식민 통치와 군사 독재로 인해서 많은 민중이 빈곤과 억압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타계점으로서 신학화 하였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성신학 또한 여권주의와 페미니즘의 영향 아래 지금까지 여성들의 모진 수난과 고통을 해방시키기 위한 요청과 함께 시대적 물줄기를 타고 여성신학 또한 신학화 된 것이다. 즉, 이 세가지 신학 모두 시대적 요청에 부응한 것으로서 가난하고 억압받고 착취당하고 있는 민중, 여성들에게 해방의 빛을 보여준 것이라 이야기 할 수 있다.
자 그렇다면, 지금의 시대적 요청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앞서 말했던 신학들이 각광받고 힘이 되어준 메시지였다면, 지금의 현 시대 속에서 가난하고 억압받고 힘들어하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힘과 소망과 빛을 보여줄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어느 신학 교수님과 면담을 하던 중 이렇게 이야기 하셨다. “앞으로 신학의 비전은 없어요. 너무나 힘든 시기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전문목회자로서 교회에서 목회를 잘하셔야되요.” 나의 공부의 수준을 간파하셨는지, 일찌 감치 신학교수라든가, 신학을 가르치는 일 보다는 목회현장에서 목회를 잘 하라고 이와 같이 말씀하셨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정말 현재의 기성교회의 위기를 보시면서 이러한 위기속에서 교회를 부흥시키고 살릴 수 있도록 공부 열심히 하라는 차원에서 말씀하셨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현재, 이 시대는 교회의 위기임에는 틀림없다. 어느 한 교회에서는 이번 년도 한 해만 장례식을 80번 넘게 치뤘다고 한다. 그러나, 청년들은 점점 줄고, 교회학교 교육부서의 전도사들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교회학교에 나와야 할 아이들도 교회를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80명의 숫자는 일반 작은 교회의 전체 교인 숫자와도 맞먹는 숫자이다. 좀 더 쉽게 말해서, 작은 교회 하나가 없어졌다는 이야기도 된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만큼 교회의 위기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이러한 교회의 위기가 오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대형교회 지도자들의 9시 뉴스의 고정적(?) 출현으로 인해서? 또는 교회의 타락한 모습들 속에서? 교회들끼리 밥그릇 싸움하는 모습들 때문에? 지금 한 말 모두 해당사항이 될 수 도 있다. 그리고 나 또한 반성한다.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이라고 고백하는 신자로서 나의 삶 또한 부정적 영향을 많이 끼쳤음에 틀림없으니 말이다. 많은 이유와 원인이 있겠지만, 오늘 읽고 생각한 부분을 함께 나눠보고 싶다. 시대적 요청이, 교회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할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민중을 통해서 역사하신다고 어느 신학자가 말했듯이, 지금의 민중들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그들이 목말라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께서 민중들을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보려는 노력이 더욱 필요 할 것 같다. 이러한 노력과 함께 영원히 목 마르지 않는 물을 주시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목마른 자들이 교회로 찾아와 목 마르지 않는 물을, 생명수를 찾고 마시게 되는 역사가 이 땅에서 한국교회에서 이루어졌으면 하는 소망이다.
우리네 지금 교회는 민중신학과 해방신학과 여성신학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가난하고 헐벗고 억압받고 있는 그들을 환영하고 그들을 사랑하며 소망의 빛을 주고 있는가? 라는 생각도 해본다. 가난한 민중, 억압받고 억눌린 여성들 보다는, 힘있는 정치인, 돈 많은 기업인, 능력있는 의사들을 환영하고 사랑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알고 배운 것을 행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우리는 민중신학을 배우고 해방신학을 배우고 여성신학을 배운다. 신학하는 자세로서, 앎을 행하는 것. 지행일치의 삶이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요청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
오랜만에 주저리 주저리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다. 아직도 신학이 정립되어지지 않았고 공부할 것이 너무나 많고, 배울 것이 너무나 많은 이 부족한 놈이 한국교회를 논한 다는 것 자체가 ‘오바’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다만, 이번 이야기는 나에게, 스스로에게 다시한번 신학하는 자세를 생각하게 해주었고,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시한번 확인시켜주었고 다짐하게 만들어주었기에 이것을 글로 정리해본 것 뿐이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