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6.25 전쟁과 전시체제 (1950~1953)
6. 25 전쟁 중국과 러시아의 자료공개 과정에서 소련의 군사원조를 배경으로 한 북조선의 선제공격 설은 사실로 확인
과 정치세력관계의 변화
1) 군사지휘체제와 선제공격에 관한 의사결정과정문제
1950년 6월 26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정령 ‘군사위원회조직에 관하여’를 채택, 6월 27일에는 정령 ‘전시상태에 관하여’가 선포, 7월 1일에는 정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전지역에 동원을 선포함에 있어서’가 발표, 군사위원회에 일체 주권 집중, 결정과 지시에 대한 절대복종을 명령, 7월 4일 김일성이 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임명, 중앙집권적인 전시동원체제가 확립.
군사위원회는 그 인적 구성에서 전시행정과 군사 양면에 걸친 최고의사결정기구였지만, 당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정치위원회는 독자적으로 운영, 개전 전후의 군 지휘 계통에 관해서는 세 계통으로 분류, 군 최고수뇌부는 김일성, 최용건, 김일, 김책, 강건 등 만주파가 장악.
6월 25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와 내각 비상회의가 김일성의 발의로 개회 당시 내각 비상회의는 이미 기습 선제공격이 이루어진 후, 사후 정당화를 위한 절차에 불과.
, 증언에 의하면 김일성은 ‘이 회의는 나의 반격명령을 비준하는 내각 회의다. 내각의 결정이 없으면 전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분의 생각을 묻고 싶다’고 말했고, 전원찬성으로 가결. 공식적인 전쟁 결정은 남한의 침략에 대한 반공을 명분으로 스탈린과 김일성의 합의였고, 6.25 전쟁은 북조선의 준비된 선제 기습공격에 의해서 발발.
당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정치위원회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것은 평시에도 고도의 비밀성을 보장, 전쟁 개시의 의사결정과 관련된 토의는 주로 정치위원회를 중심으로 진행 군내에서도 정식 의사결정과정과는 다른 별도의 명령계통이 존재,
, 전쟁의 주동자인 김일성과 박헌영은 전쟁지원의 약속을 끌어내기 위해 이인삼각으로 스탈린 및 마오쩌둥과의 교섭에 임하며, 모스크바와 북경을 차례로 방문.
2) 무력통일의 실패와 전쟁의 중간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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