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라이즘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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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미드라이즘 레포트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미드라이즘
(들어가면서...)
미드라이즘은 마치 구약성서의 핵심 포인트에 맞추어 변형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비슷한 것은 흡사, 유사함이지 동일함이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야훼 하나님을 숭배하지 않는 다른 종교에서도 치유의 기적은 나타나지만 그 기적을 보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거나 영광을 돌리지는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하고 싶다. 이에 미드라이즘의 배경과 역사, 교리 등을 살펴보며 잠시 색다른 종교여행을 떠나보자. 미드라이즘의 최후와 복음과의 대조를 통하여는 여행을 멈추고 사색의 시간을 갖음이 좋을 듯하다.
미드라이즘의 배경
미드라이즘의 배경과 자료는 거의 대부분 페르시아의 공동체들과 그들의 사제들이 있었던 소아사아에서 발견되어지는데, 미드라스 전설은 잃어버려졌고 다만 조각 작품들로부터 재구성해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리스의 미술은 소아시아에서 미드라교의 교리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동원되었고 이것들은 서방 세계 전체로 확산된 건축 양식에도 채용되었다. 이러한 미술과 조각 및 건축물들은 오늘날 우리들의 이 종교에 대한 지식의 중요한 원천이 되고 있다. 모든 미드라교의 성소에는 훌륭한 미술가들의 교리를 표현한 작품들이 장식되어 있으며 그 흔적들이 시리아, 이집트 등의 동방 헬라 세계 전체에 걸쳐서 드물게 나타나고 있다. 한편 이 미드라교의 명칭은 고대 페르시아의 아르닥세르세스 2세(주전404~358년)의 비문에도 나타난다. 이 종교의 제의는 종존 맑은 샘물이 솟아나오는 바위 동굴 안에서 행하여졌고 그 깊숙한 곳의 암벽에는 ‘황소를 도살하는 신’의 부조를 볼 수 있다. 그들의 성소에 건립되었던 우상들은 기독교도들에 의하여 파괴되었지만 당시의 건조물들을 포함한 그 종교의 여러 가지 유적들은 현재에도 유럽에 많이 남아 있다. 고대 브리텐 지역에까지도 이 종교가 유행했다는 증거는 하드리안누스 성벽에 새겨진 미드라스의 조각이다. 이것은 고대 영국인들에게도 인기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케로우버그에는 멸망과 재건의 반복의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것은 기독교와 미드라이즘의 세력 다툼, 즉 교대자리 싸움을 의미한 것이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것들 중 최대의 미드라교의 신전은 1912년 카라칼라 황제의 온천탕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이것은 로마 황실의 후원으로 3세기경에 이 종교가 크게 성행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드라교의 예배 장소는 이와같이 천연 동굴이나 인공의 석굴로 이루어졌으며 대체로 석굴 자리는 계단으로 내려가야 하는 지하 예배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미드라이즘의 역사
태양신 미드라스는 후리 족의 만신전 가운데 미드라 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신으로서 인도의 산스크릿드 문헌과 고대 페르시아 문헌에도 언급되고 있는 신인데, 이 신에 대한 신앙은 아마도 인도에 아리안 족이 침입할 때 그 아리안 족의 일부가 페르시아로 들어갔었다. 그리하여 ‘고상하다’는 뜻의 ‘이란’이란 명칭이 생겨났다. 그러므로 이 신은 아리안 족이 인도와 페르시아 양 줄기로 나뉘어 지기 훨씬 이전부터 숭배되어 온 것으로서 극히 고대에 기원하고 있다. 아득한 옛날 ‘미드라’는 아리안 족의 부족신 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나중에 그는 페르시아의 최고의 신인 아후라 마즈다의 중재자 또는 그의 현현으로서 조로아스터교의 표상이 되었다. 조로아스터교에서 ‘하늘의 빛’이라고 불리운 이 신은 메소포타미아 갈대아 인들에게는 사마쉬와 동일시되었으며, 아르닥세르세스 2세는 미드라이즘을 페르시아의 국가 종교로 만들었고, 아케메니드 왕의 통치 시대에 소아시아에서 비빌로니아와 아르메니아로 퍼져나갔으며 보다 서방으로 이 제의가 널리 확산되었다.
("이란인은 가장 높은 산에 올라가 제우스에게 제물을 바쳤다. 그들은 제우스의 이름을 순환적인 창공 전체에 대하여 붙였다."라고 헤로도토스는 말했다. 이 원초의 천공신의 이름을 이란어로 알지 못한다. 조로아스터교의 성전 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는 신 , 즉 차라투스트라가 그를 종교개혁의 중심에 둠으로써 변용시키고자 한 신은 아후라 마즈다 즉 지혜의 주 전지자였다. 그러나 짜라투스트라의 종교개혁은 이 신으로부터 자연주의적 요소를 없애버렸다. 고대 아베스타의 표현에 미트라-아후라가 있다. 여기서 미트라는 아직 역사시대의 아후라 마즈다가 되지 않은 아후라와 결합되어 있으며 오히려 이 아후라는 베다 문헌의 아수라 즉 바루나를 상기시켜준다. 아후라 마즈다는 결코 잠자는 법이 없고 어떤 마취약도 그에게는 효과가 없다. 그 때문에 어떤 비밀도 "그의 날카로운 눈길을 피할 수 없다. 아후라 마즈다는 계약의 불가침성, 약속의 준수를 보증한다. 아후라 마즈다는 짜라투스트라에게 왜 그가 미트라를 창조하였는가를 밝히면서 약속을 깨는 자(미트라=계약)는 나라 전체에 불운을 가져오는 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아후라 마즈다는 인간들 사이의 좋은 계약관계를 보증하고 우주의 여러 힘의 균형과 전체의 번영을 확고히 해 준다 그것은 또 미트라가 전지한 이유가 된다. 그러므로 미트라는 1만 개의 눈과 귀를 가지고 있으며, 또 아후라 마즈다와 같이 오류가 없고 힘이 있으며, 결코 잠자지 않고 감시하는 존재이다. 미트라는 또 속일 수 없는 자이고 전지자이다.)
특히 파르티아 시대(주전 3세기에서 주후 3세기)와 로마 제국 시기 동안에 근동세계를 비롯한 다른 여러 나라에서도 널리 퍼지게 되었다. 로마 황제 폼페이우스 전투 운동(주전 66~63년)대부터 특히 로마 군대에서 인기가 있었다. 이 종교는 조로아스터교(배화교)와 마기 족을 통하여 전수되었고 마기 족은 서부 페르시아에 살았던 비 아리안 계통의 원시 토착민들로서 조로아스터 교도들과 접촉하게 되자 그 백성은 승려로서의 위치를 차지했던 사람들로서 이들은 기원전 6세기에서 4세기에 걸쳐서 통치하던 아케메니드 시대 말에 융성했다. 기원전 6세기에 페르시아가 세계적인 대제국이 되었을 때에 이 미드라이즘은 그들의 정복지를 따라 서쪽으로 퍼져나가서 마침내 그 땅의 주신으로서 새로운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이 종교는 기원 75~68년경에 고대 로마세계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이 종교는 인류가 점차 세기말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었던 기원후 1세기 말과 4세기 사이에 근동 세계에 두루 퍼졌고 3세기 중엽에는 크게 확장되어 로마제국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이 미드라이즘은 군대와 노예 및 상인들에 의하여 로마 제국 내로 전파되어 그리스, 서 갈리아, 스페인 등지에까지 전파되어 나갔었다. 폼페이우스(주전 106~48) 이후 로마 제국의 수호신으로까지 격상되었다. 그리하여 거의 200여 년간 기독교의 주된 경쟁자의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로 개종한 이후부터는 급속히 쇠퇴하게 되었고 따라서 5세기 초에는 그것은 역사의 한 유물에 불과하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골고다의 십자가 처형 사건의 최초의 목격자들이 로마 군대의 보초병들이었듯이, 미드라이즘의 전파는 대체로 로마 제국의 군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종교가 근동을 비롯한 유럽 세계에 널리 퍼지게 된 것은 로마 국토의 전선들에 주둔해 있던 보조 군대, 즉 플라비아누스 왕조 이후의 황제들이 근동 아시아에서 모집하여 다뉴브, 라인 또는 북부 블리타니아 발룸 전선 등을 수비하게 하던 속령 국토의 보조군과 보병대 대문이었다. 왜냐하면 미드라이즘의 제의(특히 the male cule에서)에는 그의 군인 신도들에게 생명과 용기를 전하여 줄 수 있는 자인 ‘황소-정복자’(a bull-conqueror)의 영웅적 ‘상징’(the heroic image)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드라이즘의 중심지는 다뉴브 상류의 카르눈툼과 아퀸쿰의 군사 주둔지였다. 아프리카에서도 람비이시스 주둔 제3군단의 진지와 마스쿨라, 시티티스 같은 몇몇 군사 요충지는 미드라교의 기념물을 남겼다. 이 종교의 전파에서 군대 다음으로 중요했던 것은 국가, 자치 도시, 개인 등이 고용했던 노예 인구였다. 첫째 부류를 이루는 것은 무엇보다 세관과 광산, 채석광 같은 국영 기관의 고용원들이었다. 이태리에서는 자치시의 공복들이 이 종교의 전파에 큰 기여를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노예들, 특히 로마 부유층의 가정 노예들이 이 종교의 전파에 큰 역할을 했다. 한편 상인들도 종종 이 종교의 신도들이었음이 명백히 나타나고 있는데, 해로로 지중해 동부와 연결되어 있던 무역로를 따라 미드라이즘을 전파시킨 수입 노예들의 흔적도 나타나고 있다. 이 미드라이즘은 최종 단계에서 태양 범신교로 흡수 통합되었는데 3, 4세기의 로마 사회에 당시의 철학과 과학을 조화시킨 신학을 제공하였으며, 아우렐리우스 황제 재위 시에 로마의 국교로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황제 숭배가 종교적 본능을 충족시킬 수 없었듯이, 태양에 대한 국가적 예배는 적합지 못하였고 따라서 로마 제국의 군대와 관리 계층의 종교였던 미드라이즘은 마침내 원로원 내에서도 이교를 옹호한 교양인 집단들에게는 힘을 잃은 신분의 한 상징이 되었으며, 제국의 변경과 알프스 계곡들에서 그 명맥을 유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