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하녀에서 나타난 인간의 존엄성에 의한 악마성 발현
김기영 감독의 영화 에서 나타난 여주인공, 하녀의 행동은 그 시대에서도, 지금 2010년도에서도 파장이 크다. 그것은 존엄성을 찾기 위한 한 인간의 노력이 한 가정에게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화목했던 한 가정이 얼마만큼 붕괴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서구의 산업 혁명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한국의 1960, 1970년대의 여성들은 산업화의 빠른 속도만큼 겪은 삶의 단절이나 갈등의 폭도 매우 깊었다. 그 당시, 여성노동자들은 그들의 남자형제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희생해야만 했다. 여성들은 아무런 항의 없이 그런 책임을 떠맡도록 문화적으로 길들여졌고, 자신은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할지라도 가문의 출세를 위해서 남자형제들이 학교에 가야 한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이후 여성들은 때때로 저임금, 장시간 노동, 비인간적인 대우에 저항하기도 한다. 는 이 당시 여성노동자들의 상황을 잘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영화 내에서 여성 공장 직원(女工)인, 조경희는 그녀를 인간적으로 대하며 음악이라는 교육을 받게 해준 음악 선생인 김동식을 좋아한다. 그 예로, 조경희는 김동식이 하녀를 고용하도록 사람을 소개시켜 주고, 그의 집에서 피아노 레슨을 받으며 그에게 애정을 받으려 애쓴다. 조경희의 소개를 받고 김동식의 집에서 일을 하게 된 하녀는 인간적인 대접을 받는 조경희를 보면서 자신 또한 김동식에게 애정을 받고 싶어 한다. 그녀 자신은 하녀이므로 인간적인 대접을 받아보지 못했고, 하녀로 살아오는 것을 당연시 해왔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입장은 아니나 여공(女工)인 조경희가 김동식에게 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것을 보니, 하녀는 그녀 자신도 하녀가 아닌 한 여자로 살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느끼며, 그러한 가능성은 김동식이 만들어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경희가 김동식을 유혹하려는 것에 실패하자마자, 하녀는 김동식에게 “나도 미스 조처럼 껴안아 주세요. 뛰어 들어오고 싶어 혼났어.”라는 말을 하며 김동식을 유혹한다. 이러한 계기로 하녀는 김동식과 성관계를 맺게 되고, 아이를 가지게 된다.
이를 통해 하녀는 뱃속의 아이를 통해서 자신 또한 조경희나 김동식의 아내처럼 한 인간의 존엄성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녀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김동식의 아내는 그 사실을 참아내지 못한다. 결국 하녀는 김동식의 집 계단에서 떨어지며 아이를 유산한다. 더 이상은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하녀는 아이를 빼앗겼다는 사실에 기만과 배신감이 일고, 김동식 일가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 “날 좀 살려줘. 날 살려줘. 이집 년놈들은 쓰면 뱉고 달면 삼킨단 말이야. 어머니! 어머니! 물 좀 줘! 물 좀!” “왜 내 애만 죽여야 되는지 모르거든요. 이집 남자는 애를 배게 하고 이집 여자는 애를 떼게 하고 내 몸은 장난감처럼 뭘 해도 좋나요?” 하며 외친다. 처음부터 아무 것도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덜 느끼겠지만, 존엄성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발견했던 하녀는 그것을 빼앗겼다고 느끼자 더 이상 제 정신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김동식의 아들, 창수에게 쥐약을 탄 수돗물을 줬다고 거짓말을 하며 계단에서 떨어져 죽게 하고, 자책감에 빠진 김동식과 자살을 하며 한 가정을 완전히 파탄을 내버리고 만다.
한 인간이 자신의 존엄성을 찾으려고 했으나, 그것에 실패한 나머지 한 가정을 파탄 내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는 기대와 기회가 인간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지만, 한번 부여되었던 기회와 기대의 박탈은 인간에게 더 큰 상실감 혹은 복수심을 준다는 점을 느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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