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를 극영화 안으로 끌어들이는 법 - 에릭을 찾아서, 켄로치
켄로치
네비게이터,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등으로 골수좌파로 불리기까지 하는 켄로치 감독의 에릭을 찾아서는 그의 전작들과 닮은 듯 하지만 약간의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는 영화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노동자 계층에 대한 모습이나 가족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드러내거나 약간의 경제제국주의적인 것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도 담겨있어 분명히 켄로치 감독다운 묵직함을 던져준다. 하지만 주목해야할 점은 그 묵직함이 무엇을 통해 나타나는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흔히 우리가 리얼리티라고 말하는 지점과 연결되는데 그가 자신의 영화 에 부여하는 리얼리티는 일반적인 극영화의 성질들과는 다르다.
켄로치의 에릭을 찾아서의 주인공은 에릭 비숍이라는 한 늙은 남자이다. 영화는 집배원인 에릭 비숍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의 리얼리티는 표면적으로 보자면 캐릭터들에 대한 세세한 묘사, 그리고 그들의 실제 존재하는 삶을 따라가는 듯 한 이야기에 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이 표면적인 것들조차 가능케 했던 것은 다른 지점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켄로치는 이 영화에서 에릭 비숍과 이름이 같고, 영국 맨체스터 축구 클럽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스트라이커라고 칭송 받는 에릭 칸토나를 주인공 비숍의 분신으로 내세운다. 주인공 에릭은 캐릭터 적으로만 보자면 과거에 대한 미련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이다. 그것은 과거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인 릴리 때문이고, 그것은 이미 여러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이런 그의 모습은 칸토나에게 광적으로 기대는 모습으로까지 나타난다. 실제 자료에 따르면 에릭 칸토나는 은퇴한지 이미 10년이 넘게 지났기 때문에 에릭 비숍의 이런 광적인 집착은 그가 공황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병력과 결합하면서, 비숍이 가지고 있는 릴리에 대한 마음 그리고 현재의 비숍의 상태에 대해 더욱 풍성하게 표현하는 장치이다. 하지만 그저 칸토나를 활용하는 방식이 이쯤에서 그쳤다면 극영화 속의 다큐멘터리 요소를 파악하는 이 글에 대한 소재로 이 영화를 선택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비숍의 칸토나에 대한 집착은 내러티브로 작용하는 이런 심리적 요소 말고도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켄로치가 에릭 칸토나라는 인물을 영화에 등장시킨 이유는 분명 에릭 비숍이라는 인물의 심리적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서지만 그것과 함께 주변의 작은 요소들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는 섬세함을 보여준다. 에릭 칸토나라는 인물의 대단한 골, 그리고 플레이들, 영화 엔딩 크레딧 장면에서는 칸토나의 예전 폭행사건 후의 인터뷰 장면들까지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그것과 더불어서 비숍과 칸토나의 대화 신들은 마치 비숍이 칸토나에게 인터뷰를 하는 방식으로 그에게 조언을 구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식들을 통해 몇몇 장면에서는 주인공인 에릭 비숍보다 에릭 칸토나의 이야기를 영화 전면에 내세운다. 이러한 장면들에서는 관객들은 마치 칸토나가 말하는 사건에 대한 전말, 혹은 자신의 최고의 플레이에 대한 언급 등을 보면서 이것은 비숍이 주인공이 아닌 칸토나가 주인공이라고까지 느끼게 만든다.
이 영화는 비숍의 심리적인 상태와 사건들을 쫓아가도 말이 되는 영화이지만, 위의 단락과 비슷한 의미에서 사실 칸토나의 이야기만 보더라도 관객들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대단한 스트라이커였던 칸토나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비숍이 극중에서 칸토나를 대하는 태도는 (결국에는 친구가 되지만) 열광적인 팬 중 한명에 지나지 않다. 그래서 그가 칸토나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이 위대한 스트라이커를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마치 자신들이 궁금했던 것들을 비숍이 대신 질문을 던지는 것과 다름없다. 칸토나는 시종일관 진지한 태도로 그의 질문에 답변한다. 하지만 그의 답변은 위대한 축구선수로서 칸토나의 답변 보다는 경기장 밖의 인간으로서 칸토나의 모습이다. 그의 축구에 대한 철학과 더불어, 경기장에 나섰던 마음가짐 등을 통해 인간 에릭 칸토나가 축구 선수로 살며 짊어져야 했던 부담감과 심리상태에 관객들이 매료되게 만든다.
감독이 인간으로서의 칸토나의 모습을 드러내기를 바랐다는 것을 찾아볼 수 있는 점들은 영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축구선수로서의 칸토나의 모습보다 정말 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 칸토나의 존재가 나타나는 순간부터 이 영화는 단순한 극영화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칸토나에 대한 기록, 혹은 인간으로서의 칸토나에 대한 고찰 형태의 영화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다큐멘터리의 성질과도 닮은 점들이 많다. 켄로치는 이 영화에서 에릭 칸토나가 위대한 축구선수로 보이길 원하지 않는다. 그가 축구선수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장면들은 비숍에 방에 붙어 있는 브로마인드, 그리고 자료화면의 활약상뿐이다. 칸토나는 비숍과 자신의 위대한 플레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는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과거를 추억하는 인간으로서의 칸토나에 가깝다.
비숍이 칸토나를 처음 만나게 되는 것, 자신의 벽에 붙어 있는 칸토나의 브로마인드에 대고, ‘자낸 어떻게 지내 에릭, 자살을 생각해 본적 있어? 누가 자네를 사랑하지 에릭?’ 이라고 물어본 후 에릭 칸토나는 에릭 비숍의 앞에 나타난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는 축구선수와 그를 사랑하는 팬의 만남이 되는 것이지만, 깊숙이 들어간다면 그들은 인간 대 인간으로서 만나는 것이다. 사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관객들이 어느 순간에서는 에릭 비숍 말고 에릭 칸토나를 주인공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했는데, 칸토나가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비숍이 칸토나에게 위대한 자신의 우상이 아니라 친구, 혹은 자신 내면 깊숙한 자기 자신으로 여기는 순간 칸토나는 비숍의 분신, 그리고 비숍은 칸토나의 분신이 되는 것이다. 즉, 결국에 에릭 비숍과 에릭 칸토나는 동일시된다. 비숍과 칸토나의 결합은 단순히 비숍 한 인물과의 결합이 아닌, 칸토나를 사랑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응원하는 비숍과 같은 노동자 계급들과의 결합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축구클럽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를 보여주고 이것을 통해 켄로치는 맨체스터에 살고 있는 이런 노동자 계급들의 삶에 대한 리얼리티를 획득하는 것이다.
극 중에서 비숍과 칸토나가 하나가 되기 시작하는 지점들은 칸토나의 조언을 받아 부엌에서 프랑스 어인 ‘농’ 을 외치고, 운동을 시작하게 되는 지점들 일 것이다. 거기다가 비숍은 칸토나와 춤을 추고, 그 춤은 비숍 자신의 과거 릴리와의 추억을 회상하게 만들면서 칸토나와의 춤은 릴리와의 춤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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