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의사의 자질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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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좋은 의사의 자질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좋은 의사의 자질이란 무엇일까?
‘좋은 의사의 자질이란 무엇일까?’ 이 질문은 단순하게도 보이지만 그 답을 내기 위한 생각의 꼬리는 꼬리를 물어 결국 미궁 속으로 빠져버리고 만다. 의료 인문학 수업을 시작한 후로 줄곧 좋은 의사의 자질에 대한 어떠한 힌트라도 얻을까봐 교수님의 저서들과 메디컬 뉴스, 다큐멘터리 명의’, ‘닥터스’ 그리고 의료 환경을 배경으로 한 영화와 외화 드라마들을 보았다. 하지만 힌트보다도 미처 닿지 못한 생각들을 접함으로써 생각의 골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순간조차도 무슨 말을 어떻게 써야 할지 머뭇거려만 진다. 나는 이 보고서의 주제, ‘좋은 의사의 자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른 자료들을 기록하기보단 자료들을 접했을 때 내가 고민했던 생각들을 말해보고 정리해보고자 한다.
우선 질문을 보고 생각의 방향을 잡기 위해, 질문에 사용된 단어를 사전적 의미로 이해해보고자 했다. 먼저 ‘의사’란 ‘의술과 약으로 병을 치료·진찰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으로, ‘좋다’란 말은 ‘대상의 성질이나 내용 따위가 훌륭하여 만족할 만하다’란 의미를, ‘자질’은 ‘어떤 분야의 일에 대한 능력이나 실력의 정도’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사전적인 의미를 기반으로 ‘좋은 의사의 자질이란 무엇일까?’란 질문은 ‘훌륭하여 만족할 만한, 병을 치료·진찰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의 능력의 정도는 무엇일까?’로 풀이 될 수 있으나 풀이된 질문의 의미조차도 어떤 기준을 가진 객관적 의미보다도 추상적인, 모호한 언어들로 나타나진다. 그러나 나는 ‘훌륭하여 만족할 만한’이란 문구에서 ‘만족’이란 행위를 하는 대상을 의료행위의 핵심적 두 대상인 ‘환자’과 ‘의사 자신’로 분류해 물음을 바라보고자 한다.
caseⅰ) 하루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한창 의료인문학 발표를 준비하고 있었던 터라 미용사의 자질로 의사의 자질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의대생다운(?)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평소 나는 어머니의 단골 미용실인 조그만 동네 미용실에 다녔다. 그런데 이 동네 미용실은 실력이 좋은 미용사가 있지만, 낡은 미용기구, 깨끗하지 못한 내부, 오래된 내부 인테리어, 미용실 원장님의 어린 아이들의 소란스러움 등 흔히들 말하는 서비스에 대해서는 거의 낙제점이었다. 그래서 이 날 마음먹고, 동네 미용실 원장님을 배신(?)하고 시내에 있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브랜드 미용실에 갔던 것이다. 이 브랜드 미용실에 들어갔을 때 나는 눈에 익지 않은 미용실 환경을 보고 흡족해 했었다. 정리 정돈이 잘 되어진 물건들, 반짝반짝 거리는 대리석 바닥, 중심에 ‘ㅁ’자 형태로 생긴 카페 라운지, 일괄된 유니폼을 입어 호감을 주는 미용사들 등등 동네 미용실에서 내가 접할 수 없었던 환경에 흐뭇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미용실을 나서는 순간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우습게도 ‘앞으론 동네 미용실에만 가야지’하는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이 유명 미용실은 서비스는 좋았지만 서툴러 보이고, 상술적인 말만 늘어놓는 미용사들이 내가 약한 모발을 가졌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행’이란 말만 붙여 나에게는 좋지 못한 미용술과 기계를 사용해 그 결과 기대했던 머리 모양이 나오지 못했을 뿐더러 모발을 더 약하게 만들어 별도의 조치가 필요해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아무리 서비스가 흡족했었더라도 그 흡족은 아주 일순간이었고 이후의 불만족은 아주 커, 비록 시설적인 측면에서의 서비스는 없지만 내 머리에 대해 잘 알고 나에게 맞게 미용술을 해주는 동네 미용실을 다시 찾아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의료행위에 대응시켜 비추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점차적으로 의료의 상업화가 진행되며 환자가 소비자의 형태로 된 현재 ‘의료행위’에서는 더 이상 ‘뛰어난 의술’만으로는 환자들을 끌어들일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다수의 의료행위의 장인 병원은, 예를 들면 최신 의료 장비 설비, 깨끗하고 멋스러운 내부 인테리어, 컴퓨터나 모바일 서비스 등을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게끔 바뀌어 가고 있으며 심지어 체인 형태인 ‘브랜드 병원’까지 나타나고 있다. 마치 동네 미용실에서 브랜드 미용실로 변하는 것처럼 말이다. 앞에서 말한 미용실 사례에서 비추어 보았을 때 나는 여기서 이러한 ‘서비스’가 부연적인 것이 아니라 중심이 되어버리고 있는 사태는 일시적으로 환자들에게 만족을 줄 수는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그 만족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미용실에 간 이유는 머리모양을 손질하기 위해 간 것이듯, 환자들이 병원에 찾아간 원래의 주목적은 ‘병을 치료함’이지 서비스를 받고자 함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순간의 서비스에 만족해하는 환자도 만약 자신의 목적인 ‘병의 치료’가 이루어 지지 못한다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병원, 의사를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 내가 말하고 싶은 점은 의료행위에 있어서 자질의 평가는 ‘의사’에게 집중되어 있고 그 외의 것들(예를 들면 서비스)은 평가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긴 하겠지만 평가의 주요 요소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즉 의료행위에 있어서 좋은 의사의 자질 중 ‘뛰어난 의술’은 필요조건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반면에 ‘의료서비스’는 여러 자질들 중 하나의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앞의 미용실 케이스에서 ‘나의 머리 상태를 잘 이해하고 배려해주어 미용술을 행하는 동네 미용실을 갈 것이다’라는 부분은 의료 행위에서는 환자가 중심이 아닌 질병이 중심이 되어 환자가 어떠한 사람인지 간에 ‘질병’에 대해서만 교과서적인 균일한 치료, 처치를 하는 의술이 아니라 환자 개개인이 다름을 알고 각각의 상태를 파악하고 이해해 치료하는 환자중심의 배려심을 가지는 의술이 좋은 의사의 자질 중 또 하나의 요소가 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브랜드 미용실에 갔을 때 유니폼을 입은 미용사들은 시각적인 호감과 미용사로써의 권위와 신뢰감 또한 주었고, 그들의 서툰 언어 사용이 불안감을 주기도 하였다. 마찬가지로 의료행위에 있어서도 의사의 단정한 용모와 적절한 언어의 사용 등을 통해 환자에게 의사로써의 권위와 신뢰감을 주어, 질병을 치료받는 환자가 의사를 믿고 의심을 품지 않으며 질병 치유에 안정적으로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자질의 요소가 될 수 있겠다.
caseⅱ) ‘질병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의료 인문학 발표를 준비할 때 우리 조는 양의, 한의를 구분에 각각에 종사하는 의사선생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질병의 관점을 비교 해 보고자 했었고 그 중 나는 ‘한의사’와의 인터뷰를 하는 역할 분담을 맡았었다. 평일,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는 지인이 운영하시는 한의원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근처에 있는 한 한의원에 들렸다. 지인이 40대 초반이시어서 그런지 인터뷰 질문에 대한 답변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양의학적 관점이랑 비슷했었고 집근처에 80세이신 한의사가 계시다기에 그분을 찾아가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비교해 보고자 했던 것이었다. 이 한의사는 동네에서 무섭기로 소문나 있었기 때문에 긴장된 상태로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평일 이른 시간이여서인지 환자가 없어 원장님이 환자 대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무슨 이유에서인진 모르지만 한쪽 다리를 잃으신 원장님은 목발로 버티신 체 서 계셨고 인터뷰를 해주실 수 있겠냐는 물음에 퉁명스럽게 “들어와라”는 말만 하셨다. 그렇게 원장님과의 인터뷰는 시작되었고 인터뷰 시작 30분간은 내가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하지 않으신 체 양의학과 신세대 한의사들에 대한 불만만 늘어놓으시다 환자가 오자 “자네 바쁘지 않으면 계속 있게”라는 말만 하신 뒤 불편하신 다리를 이끌며 환자를 치료 하러 가셨다. 그 뒤 2시간 동안 원장님과의 긴 인터뷰를 했었는데 원래 알고자, 듣고자 했던 답변 보다 더 좋은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다. 원장님은 80세이시고 60년의 진료 경력을 가지고 계신다. 그러니깐 원장님은 한의대와 같은 교육기관에서 한의학을 배우신 것이 아니라 다른 한의학 선생님(원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밑에서 동무들과 한의학을 배우셨다. 그리고 서툴렀던 진료와 처방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있었던 일들, 주로 특별한 환자를 치료 하신 경험들을 이야기하셨는데 예를 들면 일을 하다 뜨거운 물을 뒤집어 써 화상을 입은 아가씨를 치료한 경험, 고열을 앓아 죽을 뻔한 아이를 살린 경험 그 밖에도 환자들이 가끔 의심을 했었을 때 그 의심을 자신의 의술을 통해 사라지게 한 일, 화상 환자들을 많이 치료하면서 만든 약소개 등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특히 어떤 환자를 치료한 경험에 대해 말씀 하실 때 그 환자의 직업, 연령대, 가족사, 개인사 등 그 환자의 질병이외의 내용들을 말씀하시며 처음에는 자신도 ‘병을 치료함’에만 관심을 뒀었는데 알고 보니 어떠한 상황에 환자가 놓여있는지를 앎으로써 더 효과적으로 병을 치유할 수 있었다고 하셨다. 이 긴 2시간 반 동안 원장님의 60년 의료 경험을 다 말씀 하실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병을 앓거나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질병을 치유한 이야기는 반복해서 하셨다. 또 “편하게 쉬실 수 있으실 텐데도 환자를 보시는 이유가 있냐?”는 질문에는 “계속 환자를 치료하면서 의학을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다”라는 학문에 대한, 의료 경험에 대한 욕심을 내비치시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이 개발하신 화상치료약의 효능이 뛰어나 다른 한의사들도 그 비법을 배우기 위해 자신을 찾아왔었다는 이야기와 또 그 약을 학회에서 발표해 다른 의사들도 놀랬었다며 나에게도 다음에 전문의가 되면 이 약을 받아가서 실험해 보아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그 무뚝뚝해 보이던 원장님이 특별한 케이스의 환자를 치유했을 때, 자신이 만든 약이 좋은 효능을 보일 때를 회상하시며 말씀하실 때 웃으셨을 때 나도 모르게 마음이 짠했다. 이 웃음은 왜 나이가 80이 넘고 60년이 넘도록 진료를 하시는 지에 대한 대답과 같았다.
며칠 전 나는 동네 슈퍼를 가다가 빵모자를 눌러쓰시고 목발을 짚으시고는 택시를 잡으시는 원장님을 보고는 너무 반가워 달려가다 몇 발치에서 멈춰 택시를 잡으실 때까지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하루에 10명도 체 안 오는 환자를 보기 위해 불편하신 다리를 이끌고 저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