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프롤로그
왜 지금 세종을 재발견해야 하는가?
여는 강의
마인드맵으로 읽는 세종 리더십
제1부 위대한 지도자의 조건
제1강 세종의‘습관노트’
-세종은 누구인가
제2강 태종의 위대한 선택
-세종시대를 위한 길닦기
제3강 왕의 조건
-왜 충녕인가
제4강 정치비전
-어짊을 베풀어 정치를 세운다
제5강 성공적 왕위 승계자 태종의 행복
-세종시대를 위한 길닦기
제2부 세종식 경영: 인제경영과 지식경영
제6강 인재충원
-인재의 선발 · 검증 · 재교육 과정
제7강 강점경영
-공적으로 허물을 덮게 하라
제8강 혁신경영
-수령 임기 늘려 유능한 관료 만들라
제9강 독서경영
-제왕학 교과서《대학연의》
제10강 토론의 힘
-파저강 토벌 대논쟁
제11강 세종의 열린 수업
-책읽는 순서와 공부 내용
제3부 세종의 비전 경영
제12강 창조와 문화 국가 비전
-훈민정음 창제
제13강 영토비전
-4군6진 개혁
제14강 법 제도의 존립이유
-수령고소금지법 개정
제15강 마음경영
-백성을 감동시켜라
제4부 어록으로 보는 세종 리더십: ‘세종 십계명’
제1계명 밥은 백성의 하늘이다
제2계명 왕을 추대한 백성들에게 헌신하라
제3계명 인재를 기르고 선발하고 맡겨라
제4계명 싱크탱크를 활용하고 회의를 잘 하라
제5계명 억울한 재판이 없게 하라
제6계명 외교로 전쟁을 막고 문명국가를 건설하라
제7계명 영토는 한치도 양보할 수 없다
제8계명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온 힘을 기울여
실천하라
제9계명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라
제10계명 사회적 약자를 우선적으로 배려하라
에필로그
다시, 세종처럼
부록
세종대왕과 그의 시대
조선 임금 계보도
제1강 세종의 ‘습관노트’- 세종은 누구인가
이 글에서는 세종의‘습관노트’에 의거하여 철저하게 기록된 사료에 의거해 인간세종의 모습을 그립니다.
세종의 가족관계는 《세종실록》의 맨 처음에 나오는‘총서’에 다음과 같이 요약되어 있습니다.
‘세종 장헌 영문 예무 인성 명효 대왕의 휘는 이도요, 자는 원정이니, ① 태종 공정 대왕의 셋째 아들이요,②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이다. 태조 6년 정축 4월 임진에 한양 준수방 잠저에서 탄생하였으니, 명나라 태조 황제 홍무 30년이다. 영명강과하고,침의 중후하며 ,관유인자공검하고, 또 효도하고 우애함은 천성이 그러하였다. 태종 8년 무자 2월에 충녕군으로 봉하였고,③우부대언 심온의 딸과 결혼하여 ④그를 경숙옹주로 봉하였다.’
세종의 성품은 첫째, 위에서 읽은 ‘총서’에 나타났는데 번역해 보면 “영특하고 문명하면서도 과단성이 있으며 강의하고 신중하면서도 너그러우며 인자하고 공손하고 효성스럽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둘째, 그가 사망했을 때 신하들이 중국에 보내는 부고에 적은 말입니다. 거기에 보면“천품의 자질이 영예하고 심중하고 후하며, 배우기를 즐겨하고 게으르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되어있습니다. 셋째, 위의 ‘총서’초두에 있는 장헌 영문 예무 인성 명효라는 시호에는 “영특하고 문명하며 슬기롭고 용감하며 어질고 뛰어나며 명철하고 효성스러운 대왕”이라 되어 있었습니다. 넷째, 왕위에 오르기 전에 나온 부왕 태종의 평가입니다. 태종의 충녕대군에 대한 최초의 평가는 그의 재위 말년인 1418년 6월에 나오는데 거기에는 그의 천성이 총명하고 민첩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아마 민첩하다는 말은 두뇌회전이 빠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관홍 장중하고 효제 겸공하여 사랑과 공경으로 어버이를 섬기고, 도를 지켜 공경하고 삼가며, 총명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여 오직 날마다 부지런히 한다.”라고 태종의 평가가 나와 있습니다. 어쨌든 이상의 기록을 통해서 세종대왕의 성품을 추정해본다면, 그는 우선 머리가 좋고 공부를 좋아했으며 동작이 재빠르지는 않고 오히려 의젓하고 조심하며 부지런한 성격의 소유자 였습니다. 과단성이 있고, 동시에 성격이 다정다감해서 부모 형제에게 효제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겸손하면서도 공경하는 자세를 가진 사람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하고 보니 세종대왕은 우리가 이상형으로 생각하는 좋은 군주 상의 전형이라고 이해되고,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부왕 태종이 젊은 충녕대군을 가리켜 말할때와 달리, 사망 시의 세종대왕은 ‘과단성’있는 군주로 평가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이것은 국왕으로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나중에 형성된 성품으로 보입니다.
세종이 좋아하는 음식과 취미에 대해 말해 보자면 세종은 술을 잘 못한다는 것을 태종의 말인“ 충녕은 비록 술을 잘 마시지 못하나 적당히 마시고 그친다.”를 보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세종은 신하들의 지나친 음주에 대해 지적하곤 했는데 대표적으로 세종이 아끼던 윤회는 술 때문에 서연에 불참했는데 이말을 듣고 세종은 다름과 같이 타일렀습니다. “자기의 주량을 생각하여 한두 잔쯤 마시든지, 반 잔쯤만 마신다면 그렇게 정신이 없고 체면을 잃게까지야 되겠는가. 이제부터는 부디 지나치게 마시지 말라.”《세종실록》12/12/22 어쨌든 세종은 술을 전혀 못 마시는 것은 아니나, 즐기는 체질은 아니었고 술의 해독을 깨달아서 절제했습니다. 다음으로, 세종은 육식체질이었습니다. 세종은 하루에 네 끼의 수라를 드실 정도로 식성이 좋았는데 특히 육식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주상은 고기가 아니면 수라를 들지 못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외에 세종이 좋아했던 과일은 앵두였는데, 세자 향이 이것을 알아서 궁궐 정원에 앵두나무를 심어서 때다 드리곤 했습니다.《문종실록》02/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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