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문] 부산국제영화제 - 미스 좀비
영화 ‘미스 좀비’는 현장 예매를 하여 어렵게 보게 된 작품이다. 힘든 시간을 들여 예매한 영화이면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좀비 영화이기에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영화관에 입장하였다.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이 컸던 영화 ‘미스 좀비’는 다나카 히로유키 감독의 좀비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담은 저예산 독립영화이다. 사부 감독은 놀랍게도 이 영화를 5일 만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5일 만에 완성한 영화라고 하기에는 스토리 구성이 비교적 탄탄하여 놀라웠다.
좀비를 연구하는 어느 연구원의 통화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 연구원은 테라모토에게 사정이 생겨 좀비를 잠시 맡아줄 것을 부탁한다. 아주 거대한 택배가 테라모토의 집으로 도착하고 철창에 갇힌 여자좀비 사라가 움츠리고 있다. 여기서 상당히 독특한 설정이 나온다. ‘좀비’를 등급에 따라 나누어 장난감이나 애완동물처럼 키우는 설정이다. 이들에게는 사용설명서도 있다. 육류를 먹이로 주었을 경우, 사나워지기 때문에 각별히 조심해야 하고 위험할 경우 총을 쏘아 죽이는 것이 사용설명서의 내용이다. 좀비의 등급 중 낮은 등급이기에 사람을 해하지 않는 그녀는 그 집의 하녀로 일하게 된다. 테라모토의 아내는 연민의 감정으로 사라를 잘 보살펴 준다. 하지만 사라의 생활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일이 끝나고 그녀의 창고로 돌아가는 길에 사라는 다르다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돌을 맞거나 죽지 않는다는 이유로 흉기에 계속해서 찔리는 등 많은 수모를 겪는다. 그러던 어느 날, 테라모토의 아들 켄이치가 물에 빠져 익사하게 된다.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던 테라모토의 아내는 사라에게 뛰어가 켄이치를 물어 좀비로 살려내라 한다. 그렇게 켄이치는 사라와 같은 좀비가 되어 살아난다. 이를 시초로 사라의 삶은 달라진다. 켄이치가 지속적으로 살기 위해선 피를 지속적으로 먹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라는 이제껏 자신을 괴롭혀왔던 자들을 찾아내 죽여 피를 켄이치에게 먹인다. 켄이치는 이후 사라가 엄마인 양 뒤따르게 되고, 사라는 과거 자신이 인간이었을 때 임신하였던 사실을 기억해내며 점차 켄이치에 대한 모성애가 자라나기 시작한다. 이를 본 테라모토의 아내는 큰 충격을 받고 사라를 대하는 태도가 차가워진다. 다음 날, 여느 때처럼 집안 일을 하고 있던 사라를 테라모토가 부른다. 테라모토의 행동이 의심스러워진 테라모토의 아내는 그녀의 뒤를 쫓고 남편이 좀비인 사라와 성관계를 가지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알고 보니 사라는 테라모토 뿐만 아니라 그 집의 남자 일꾼들에게도 성노리개 취급을 받고 있었다. 헤어날 수 없는 충격에 빠진 테라모토의 아내는 사라를 죽이려 하고, 사라는 이를 피해 켄이치의 손을 잡고 도망친다. 보통의 좀비물과 다르게 인간이 좀비를 쫓는 구조의 추격신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넘어진 사라를 일으켜 도망가고자 하는 자신의 아들 켄이치의 모습을 본 테라모토의 아내는 자살을 택하게 된다. 이 때, 그녀를 살리기 위해 켄이치가 달려들어 목을 물지만 아직 어린 탓에 되살아나지 않는다. 이를 본 사라는 그녀의 목을 물어 켄이치의 엄마를 되살리고 자신은 결국 자살을 택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요즘 좀비물의 영화들이 좀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담아 많이 나오고 있다. 그 중 ‘웜 바디스’라는 영화와 ‘미스 좀비’가 상당히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웜 바디스’에서 좀비가 인간으로 다시 변화할 수 있는 치료제는 ‘사랑’이라는 감정이다. ‘미스 좀비’에서도 켄이치에 대한 모성애. 즉, 아이에 대한 ‘사랑’을 통해 점차 인간적인 모습으로 변해 가는 설정을 취한다. 또한 좀비와 인간이 공존한다는 것을 다루었다는 것도 유사하다. 물론 ‘미스 좀비’는 좀비와 인간의 공존이 처음부터 전제되어있는 것이고, ‘웜 바디스’는 치료제가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 서로 공존하게 된다는 차이가 있지만 다른 좀비물의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인간과 좀비의 ‘공존’이라는 것을 다루었기에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인간과 좀비의 ‘공존’이라는 것을 전제로 짜여진 ‘미스 좀비’는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긴다. “누가 좀비인지? 누가 인간인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영화 안에서의 좀비와 인간은 뒤바뀌어 있다. 인간은 좀비인 사라를 성노리개로 삼을 정도로 지극히 탐욕적이고 이기적인데 반해 좀비는 오히려 상당히 이타적이다. ‘인간다움’에 대한 고찰과 인간이 아닌 캐릭터를 통해 표현하는 새로운 접근을 통하여 사부 감독은 현실의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 인간의 인간답지 않음을 꼬집는 듯하였다.
또한 영화 ‘미스 좀비’는 연출에서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컬러의 시대에 걸맞지 않게 흑백영화였다는 것이다. 이는 제작비의 부족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닌 사부 감독의 의도였다. 생기없고 감정이 없는 흑백의 이미지와 같은 좀비가 점차 인간의 감정이 되살아나면서 영화는 점점 컬러의 이미지로 변해가는 것이다. 사부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시각적인 부분 뿐 만 아니라 청각적인 부분에서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사라의 계속되는 수세미로 바닥을 닦는 소리는 말할 수 없는 좀비 사라의 감정을 대신하여 말해주는 듯 하였다. 수세미 소리는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지속적으로 반복되어진다. 그 때마다 들리는 수세미 소리는 왠지 모르게 다르게 들려온다. 분명 같은 소리인데도 사라의 슬픔과 분노, 기쁨이 다 다르게 들려진다.
GV시간에 감독은 “인간 안에는 폭주하는 좀비가 존재한다.”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보통 좀비를 포악하고 잔인한 존재로 인식한다. 물론 많은 부분에서 좀비를 그렇게 묘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 또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비극적인 문제들을 보면 인간은 더욱 포악하고 잔인한 존재로 보여지고 실제로도 그러하다. 좀비에게서 인간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더욱 느낄 수 있었던 독특한 경험을 하게 만든 ‘미스 좀비’라는 영화를 통해 인간의 인간다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테라모토가 좀비 사라를 겁탈하는 장면.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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