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템페스트와 리어왕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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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템페스트와 리어왕 분석
우선 템페스트와 리어왕의 공통점은 바로 ‘재해석’이란 점이었다. 두 작품 모두 셰익스피어의 작품으로 고전의 작품으로 통해지지만, 이번에 올라온 작품은 그 고전 위에 ‘현대적 감성’을 덧입혔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성공적인 면도, 혹은 무리수적인 면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조화를 이루었다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할 거라 생각한다.
데클란 도넬란이 연출한 템페스트는 우선 내게 굉장히 ‘역동적인 연극’으로 기억이 된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동작이 크고, 동선이 복잡하며 호흡이나 발성 또한 무척이나 크고 역동적이었다. 첫 장면부터 무대 세트에 있는 다섯 개의 문을 통해 비바람에 몰아치는 선원들의 모습을 그려주는 것부터 크고 화려한 연출이란 생각과 함께 관객을 무대에 집중하게 만든다. 내가 기억하게 템페스트에서 가장 절제된 것은 무대 뿐, 그 외의 모든 것들은 다 한껏 열려 있다,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무대를 끝에서 끝까지 가로지르는 인물들의 동선이 특히 그러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재해석을 한 탓이었을까. 생각보다 산만하다, 라는 인상을 받은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들은 주로 절제되고 정적인, 그러면서 특유의 감성을 지닌 작품이라 생각해온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런데 데클란 도넬란의 템페스트는 고전의 그림자를 지우고 현대의 감성을 너무 두텁게 덧씌웠다는 인상이다. 그래서 배우들의 호연, 역동적인 연출에도 불구하고 지루한 요소들이 자꾸만 끼어든다는 인상이 강했다.
그에 비해 스즈키 다다시의 연출인 리어왕은 무척이나 절제된 연극이었다. 과장된 발성, 과한 대사처리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절제된 연극으로 느껴졌다. 템페스트와 비교했을 때, 우선 리어왕은 무대 전체를 사용하는 배우들이 없었다. 동선들이 거의 대부분 중간까지만 이어질 뿐, 무대 끝에서 끝을 가로지르는 인물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또한 무대 세트인 ‘문’을 통해 그 너머와 그 앞쪽을 표현해내며 인물들의 상황, 대사 등을 보여주는 등. 전체를 사용한다기 보다 ‘반으로 나누어 사용한다’라는 인상이 강했다. 그리고 배우들이 몸쓰는 것도 굉장히 절제되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자못 어색하다, 라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는 듯하지만 ‘리어왕’에서는 오히려 그것이 굉장한 플러스 점이자 매력점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대사조차 오로지 한국어, 혹은 오로지 일어가 아닌, 인물의 배열을 둘로 나누어 한쪽은 한국어, 한쪽은 일어를 사용하게 한다. 그것은 절제를 넘어 내게는 나름대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선 두 작품 중 내가 조금 더 마음이 갔던 작품은 ‘리어왕’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절제 때문이었다. 역동적이진 않지만, 절제됨 안에서 충분히 이야기를 담아냈다고 생각했다. 그 매개를 ‘문’을 통해 나타냈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본 공연이 끝난 후, 스즈키 다다시는 인터뷰에서 리어왕의 환상 혹은 회상이 혼재되어 무대공간의 밖과 안으로 구분되어 이루어졌다고 했는데, 나는 그 부분에서 공연 내내 내가 느꼈던 일종의 생각, 혹은 느낌이 무엇인지 알았다. 바로 괴기함이었다. 휠체어에 앉은 리어왕에게 책을 읽어주던 간호사. 그리고 그때마다 문 너머, 리어왕이 존재해 있는 공간의 배경으로 펼쳐지던 ‘지옥도’같이 스산한 느낌을 풍기는 그림. 누가 환상은 아름답다고 했던가. 환상은 그 자체로도 스산한 존재다. 리어왕에서는 그 환상 또한 하나의 사건으로 풀어내 잔인하고 스산한 느낌을 다루지만, 환상은 그것이 어떤 것에 대한 환상이든 간에 괴기하고 불쾌하며 스산하다.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 혹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을 담아내는 환상은 그 자체로 잔인할 따름이다.
앞에서는 템페스트가 ‘동적인’작품, 리어왕이 ‘정적인’작품이라 했는데, 이 둘을 또 다시 ‘환상적’인 작품, ‘현실적’인 작품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템페스트는 꽤나 환상적인 요소들이 등장하며, 그것을 표현해내는 정령들이란 존재를 통해 흥겹고 유쾌하게 풀어낸다. 검은 옷을 입은 잘생긴 남자들이 악기를 연주할 때나, 물을 퍼부을 때 등. 관객에게만 보이고 무대 위 인물에게는 보이지 않은 정령들. 그 자체만으로 흥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음악과 조명 및 연출, 인물들의 연기를 통해 템페스트를 환상적인 이야기로 풀어낸다. 반면, 리어왕은 그 이야기가 가진 것만큼 현실적이다. 죽음이 쏟아지고, 음모와 술수가 쏟아지며, 상상을 펼칠 수 있을 만한, 환상적이 요소들이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리어왕이 간호사에게 들은 책 내용으로 인해 꾸는 환상 또한 압도적으로 암울할 따름이다. 그러나 두 작품 중에 어느 쪽에 손을 들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여전히 후자인 리어왕이다.
스즈키 다다시 연출의 리어왕은 분명 고전의 발자취를 그대로 밟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중간 중간 자신만의 새로운 해석, 데클란 도넬란이 했던 현대적 감성을 덧입힌다. 그것이 때로는 거부감이 들만큼 강한 장력을 보일 때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음, 그렇지 뭐, 하며 넘어가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나는 그걸 노리고 스즈키 다다시가 극 전체를 절제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전체를 주무르며 새로운 해석을 덧붙인 현대적 감성을 입히는 것보단, 고전의 발자취를 밟아나가며 중간 중간 새로운 해석을 덧붙이는 게 어떻게 보면 가장 고급적으로 재미를 전달하는 방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것은 성공적이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확실하게 각인되었다. 재미있다고 말이다.
두 작품을 동시에 두고 보았을 때, 내가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그 극 자체가 가진 성격이나 표현방법이 너무도 달라, 그 중간에서 아슬아슬하게 퍼져나가는 내 생각들이었다. 분명히 두 작품이 겹치는 공통점들(고전, 문, 셰익스피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다른 노선을 따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마치 곡예를 하듯, 너무도 다른 두 작품에서 내가 끌어낸 것은, 수많은 것들 중에서도 바로 고전, 셰익스피어였다.
나는 셰익스피어가 쓴 작품들은 누구나 얘기하듯, 인간 본연에 대한 심도 있는 관찰력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단순히 그 선에만 멈춘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셰익스피어는 그 관찰력을 인물의 내부, 감정까지 파고들어간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는 언제나 음모가 등장한다. 그것이 유쾌한 음모이든, 아니면 피바람을 불어오는 음모든 간에 말이다. 거기서 피어난 음모가 드라마를 뽑아내고 인간에 대한 통찰력을 키워낸다는 생각이다. 도 도 말이다. 나는 어쩌면 이것이 셰익스피어가 지금까지 수도 없이 반복되고 재현되며 현재의 창작자들에게 모티프를 안겨주는 요소가 아닐까, 생각했다. 인물 본연의 모습보다는 드라마만 쫓아가는 콘텐츠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셰익스피어의 영향을 받은 창작자들이 선보이는 작품들, 그 안에는 대체적으로 단순히 드라마만 있는 것이 아닌 인물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본 두 편의 작품도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이 시대가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공연되는 것이 아닐까. 드라마는 시대를 탄다. 하지만 인간 본연의 모습은 시대를 타지 않는다. 그 시대의 모습이 현재가 되고, 앞으로의 미래가 된다. 그렇기에 나는 셰익스피어라는 불멸의 존재가 쓰러지지 않은 이유,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져오고 있는 그의 작품세계가 그것 때문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