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사랑이란(사랑이란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바라봐 주는 것)
(사랑이란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바라봐 주는 것)
성인이 되었지만, 아직도 나에게 사랑은 어렵다. 어렸을 적 나에게 사랑은 여느 아이들처럼 멋지고, 대단한 의미로 인식되었다. 사랑하면 모든 걸 다 이루어 주고, 나의 모든 감정을 주고 배로 받는 것이라 생각했다. 시간의 순리를 따라 세월이 지나 사랑은 더 이상 화려하고 거창한 모습이 아닌 생리욕구나 공기를 들이 마시는 것처럼 지극히 평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아 주는 것이라고 어렴풋이 짐작해본다. 하지만 이 말은 말이 쉽지, 행동은 어떠한 것보다 어렵다. 누군가는 “사랑은 교활하고, 날카롭고, 감정적이기보다 이성적이다.” 라고 말한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사랑에는 제약이 따른다는 것이다. 마음보다 이익에 눈을 더 밝히고, 가격을 매기고, 늘 상 조건이 따라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사랑 그 자체가 간사한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기대를 하고, 욕심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러한 우리의 모습 때문에 사랑까지 그렇게 비추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오쇼는 “우리의 사랑은 모두 교활하다” 라고 하였다. 이 뒤에는 “우리의 사랑에는 이렇게 하라, 이런 사람이 되라는 조건이 개입되어 있다” 라고 덧붙인다. 오쇼는 이러한 사랑의 모습을 맹렬히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모든것을 받아 들여라, 그때에 그대는 진정한 관심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그리하면 그대는 만족감을 얻을 것 이다. 그리고 상대는 엄청난 도움을 받을 것이다.” 고 말한다. 이것이 오쇼의 사랑에 대한 핵심적인 주장이다. 꽃이 예쁘다고 그것을 꺾어와 화려한 꽃병에 꽂아 놓아도 꽃은 시들시들 해지고, 결국 죽고만다. 또 꽃씨를 화분에 심고 싹이 나길 인내하지 못하고 자라기 쉽게 흙을 파버리면 그 생명은 푸른 잎을 피어 보지도 못한 채 썩어버린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봐 주어야만 꽃은 여전히 생기있고, 그 아름다움을 유지할 것이다. 사랑도 이와 똑같다. 우리들은 사랑하는 이들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나친 관심은 이들에게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어린아이가 걷는 게 서투르다고 걸음마를 하지 않고 계속 어머니가 아이를 업고 다니면 아이에게 치명타를 입히듯이 말이다. 우리는 관심을 가진 채 끈기있게 지켜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서로 사랑 하면서 조건이 생기고, 바라는 바가 많아질수록 그건 더 이상 사랑이 아닌 너와 나를 옥죄이는 사슬이 될 것이다. 우리는 그 사슬에 목이 묶인 채 자신의 본 모습을 점점 잃어가면서 상대방의 욕심에 나를 맞추어 가고 있다. 마치 네모를 깍아 동그라미를 만들듯......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모습이 상대를 위한 배려고 사랑의 표현이라 생각한다. 애석하게도 그건 사랑도 뭐도 아니다. 단지 한 사람의 알량한 심욕이다. 자꾸 많은 것을 요구할 수록 우리는 사랑의 본질에서 점점 멀어진다.
사랑을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주무르고 계속 다듬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사랑의 형태만 있는 속이 빈 조각품이다.
현재 우리 시대는 가치를 가장 중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당연한 풍경이다. 그렇지만 나는 사랑은 가치를 매기고 사고 파는 물건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랑에 값을 달고 무게를 재는 것 만큼 불행한 일이 있을까?
이런 나의 생각이 촌스럽고 유치하다는 걸 알고있다. 누군가는 이 내용에 비웃음을 보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사랑은 따지지않고 있는 그대로 봐라봐 주는 것
그거면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나의 사상이 언젠가는 현실을 인지하고 씁쓸한 웃음을 지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전까지는 나는 진정한 사랑은 이런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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