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개론 기행문 - 국립 광주 박물관(강진 용운리 청자가마) - 임실 진구사지 석등 - 임실 하가 후기구석기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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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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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고고학개론 기행문
국립 광주 박물관(강진 용운리 청자가마)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이전 복원한 이 가마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수몰예정지역인 강진 용운리에서 발굴한 4기의 가마 가운데 보존 상태가 가장 양호하며 최고 수준의 고려청자를 만든 곳이다. 이 가마는 현존 길이 8.4m, 너비 1.25m, 높이는 0.85m, 무게 20톤이 넘는 대규모의 유구이다. 가마는 반지하식으로 둥근 궁륭형 천장이 일부 남아 있고 바닥의 경사를 이루는 오름가마이다. 아궁이 입구는 원통형의 갑발을 쌓아 올려 만들었으며 중간에 이맛돌을 놓았다. 갑발이란 규석이 많이 섞인 높은 온도의 불에도 잘 견디는 점토로 만든 것으로서, 도자기를 제작할 때 가마 안의 잡물이나 재가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거나, 갑 안의 도자기가 번조되는데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형태는 원통형으로 제작되며, 상품의 도자기를 제작할 때만 사용되는 것을 말한다. 가마의 오른쪽 벽에는 그릇을 재고 빼기 위한 출입시설이 있으며, 맞은편에는 가마 안의 불꽃 상태를 살피기 위한 작은 불창구멍이 있다. 가마 벽은 갑발과 점토를 발라 쌓았으며, 가마 바닥에는 불에 익은 가는 모래가 두껍게 깔려 있다. 초기 청자를 생산한 고려 전기의 가마로서 청자 가마연구에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가마의 이전을 위해 1982년에 경화처리와 해체작업을 실시 하였으며 외국의 재료와 보존과학 기술정보를 입수하여 진행하였다. 가마의 경사도를 라 봉통부와 좌우 가마 벽을 순서대로 안치하고, 합성수지로 접합하였다. 가마 외벽에는 접합의 견고성을 위해 합성수지로 보강벽을 설치하고 무너진 천정부분과 파손된 자연 유약층을 에폭시를 사용해 복원하였다. 또한 바닥을 계단식으로 처리함으로써 바닥을 여러 차례 사용했음을 보여주었다. 청자 가마의 이전은 대형 유구의 이전으로 고도의 기술과 보존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임실 진구사지 석등
임실 진구사지 석등은 보물 제 267호로 전라북도 임실군 신평명 용암리에 위치해있다. 통일 실라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등은 우리나라에 있는 석등 가운데 두 번째로 큰 것이다. 여덟 면에 모두 창을 낸 예를 남원 실상사 석등(보물 제 35호)이나 담양 개선사지 석등(보물 제111호)에서도 볼 수 있어 호남지방 석등의특색을 보여 주고 있다. 아쉽게도 석등의 윗부분이 파손되어 원래모습이 손상되었지만 섬세하고도 정교한 문양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힐 정도로 큰 등으로 가운데받침돌을 제외한 각 부분 모두 신라시대 석등의 기본형태인 8각을 이루고 있고 석등의 전체 높이는 5.18m이다. 석등은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3단의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올리고 있다. 아래받침돌에는 옆면에 안상을 새기고, 윗면에는 커다란 꽃장식을 두었으며 그 위에는 구름을 조각하였다. 가운데기둥은 장고 모양이며, 연꽃을 새긴 마디가 있다. 팔각의 윗받침돌에도 연꽃이 새겨져 있으며, 그 위에 있는 화사석에는 각 면마다 창을 내었다. 지붕돌의 경사는 급한 편이며, 여덟 곳의 귀퉁이 마다 큼직한 꽃장식이 달려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머리장식받침)과 복발(엎어놓은 그릇 모양의 장식)이 놓여 있다.
임실 하가 후기구석기유적
하가유적은 2만 년 전 무렵 섬진강유역에서 살았던 후기구석기인들의 살림터이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모두 4차에 걸친 발굴 결과 유적의 규모가 최소 5만제곱미터로 밝혀졌다. 이 가운데 약 800재곱미터의 발굴에서 수많은 석기제작소와 약 1만6천 점의 유물이 드러났는데, 천변에 양질의 돌감이 풍부한 여건을 고려하면 당시의 석기제작 행위가 잘남아있는 원산지유적으로 추정된다. 유물의 구성을 보면 돌날돌을 비롯하여 슴베찌르개, 나뭇잎모양찌르개, 모뿔석기(각추상석기), 새로운 형식의 찌르개(나이프형석기), 새기개, 밀개, 긁개, 홈날, 톱니날, 부리날석기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확돌 모양 석기, 잘 갈린 자갈, 불탄 돌 등도 발견되었다. 이를 통해 구석기인들이 돌, 나무, 뿔과 뼈 등으로 연장을 만들어 짐승을 사냥하고 식량과 가죽 등을 가공했으며 불을 이용하면서 살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가유적의 조사로 돌날의 제작기법과 돌날로 만든 다양한 도구의 종류를 알 수 있어 후기구석기인들이 마지막 빙하기에 어떤 방식으로 생존하였는가를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나아가 일본열도의 고유한 종류로 알려진 것들이 이 유적에서 여럿 발견되어 후기구석기시대에 한국과 일본 양 지역의 문화 교류를 규명하는데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