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와 실패에 굴하지 않는 의지 - 이순신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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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내와 실패에 굴하지 않는 의지 - 이순신 장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인내와 실패에 굴하지 않는 의지
일단 관련된 덕은 인내와 실패에 굴하지 않는 의지입니다. 가르칠 수 있는 단원을 찾아보았는데 6학년 3단원에서 다루어 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교과서에 그러한 내용이 없기는 했지만 자신의 실패에도 너그러울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인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이러한 이야기를 프린트해서 나누어 줍니다.(학생 각자에게)
28세 되던 해에 비로소 무인(요즘은 사관 시험과 비슷 - 군인) 선발시험의 일종인 훈련원별과에 응시하였으나 불행히도 시험장에서 달리던 말이 거꾸러지는 바람에 말에서 떨어져서 왼발을 다치고 실격하였다.
그 뒤에도 계속 무예를 닦아 4년 뒤인 1576년(선조 9) 식년무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권지훈련원봉사로 처음 관직에 나갔으며, 이어 함경도의 동구비보권관에 보직되고, 이듬해에 발포수군만호를 거쳐, 1583년 건원보권관 · 훈련원참군을 역임하고, 1586년에는 사복시주부가 되었다. 그러나 무관으로 발을 들여놓은 그의 진로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는 사복시주부에 이어 조산보만호 겸 녹도둔전사의가 되었는데, 이때 그는 국방의 강화를 위하여 중앙에 군사를 더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들어주지 않던 차에 호인(중국의 변방 오랑캐)의 침입을 받고 적은 군사로 막아낼 수 없어 부득이 피하게 되었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그것이 오로지 그의 죄라 하여 문책하였다.
그러나 그는 처형당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장의 판결에 불복하면서 첨병(전쟁 중에 정보를 국가에 알려주는 병사)을 들어주지 않고 정죄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하고 끝내 자기의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서 중형을 면하기는 하였으나, 첫 번째로 백의종군(벼슬 없이 군대를 따라 싸움터에 감)이라는 억울한 길을 걷게 되었다.
※ 훈련원별과, 권지훈련원봉사, 동구비보권관, 발포수군만호, 건원보권관 · 훈련원참군, 사복시주부, 조산보만호 겸 녹도둔전사의 등은 모두 무인의 벼슬 이름입니다.
특히 권지훈련원봉사는 종 9품의 가장 낮은 벼슬입니다. 종10품은 일반 양민
(이러한 글을 읽게 된다면 학생들은 엄청 실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겁니다. 32살 때 가장 낮은 관직으로부터 출발해 나중에는 백의 종군 당한다는 것은 상당한 실패이기 때문입니다.
교사: 자 여러분 이 글을 잘 읽었나요? 어떤 생각이 들까요? 누가 발표해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