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애
정한모는 1923년 충남 부여에서 출생한 이후 1991년 2월 22일 68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하기까지 시인으로서 6권의 시집을 발간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시점이 대략 해방 직후이고 보면 정한모는 시인으로서 그리 많은 시집을 낸 것은 아니다.
정한모는 1943년부터 1944년 사이 서울에서 『국민시가』, 『국민시인』에 일문으로 시를 쓰면서 구경서, 김윤성과 함께 동인지 『백맥』(1945)을 만들었고, 거기에 자신의 처녀작 「귀향시편」을 발표하여 본격적으로 문단활동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1946년 봄부터 주로 김윤성과 같이 동인시집 『시탑』에 관여하여 제 6시집까지 펴내기도 했다. 1947년에는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여 전광용, 정한숙 등과 『주막』의 동인이 되어 오랫동안 작품활동의 직접적인 자극을 받는다.
또한 그는 대학 4학년 때 625사변을 맞이하였다. 생명현상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는 큰 편차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 인식에는 각 개인이 경험한 체험이 중요한 요소로서 다양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삶을 위협하는 전쟁이나 투병생활에 대한 극한적인 경험과 체험은 한 시인에게 있어서, 생명에 대한 의식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정한모는 전쟁을 직접 체험하였으며, 생명이 위협받는 경험을 하기도 한 시인이다. 이러한 경험이 시의 모태가 되어 정한모의 시에는 전쟁체험에 대한 이미지나 생명의식에 대한 이미지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그의 시를 ‘생명옹호와 생명에의 외경’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전쟁이 미친 영향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이후의 시에도 자주 나타나고 있다.
1952년에 피난지 공주에서 공주사범대학의 강사로 근무하다가 수복 후 서울에 올라와 휘문고등학교에서 3년여동안 근무하였다. 이후 석사를 마치고 1958년부터 동덕여대 교수로 근무하였으며, 1966년부터는 서울대 교수를 역임하였다.
정한모의 시집으로는 『카오스의 蛇足(사족)』(범조사, 1958), 『餘白(여백)을 위한 서정』(신구문화사, 1949), 『아가의 房(방)』(문원사, 1970), 『새벽』(일지사, 1975), 『아가의 別詞(별사)』(문학예술사, 1983), 『원점에 서서』(문학사상사, 1989) 등 여섯 권의 시집이 있다. 그리고 시선집으로 『사랑시편』, 『나비의 여행』이 있으며, 작고 이후 발간된 『내 유년의 하늘엔』이 있다. 그리고 2001년 2월에는 정한모 10주년 추모사업의 일환으로 그의 전집이 출간된 바 있다.
그는 많은 연구서와 공저를 남기는 연구 업적을 쌓았을 뿐만 아니라, 1987년 예술원상, 1991년 대한민국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만년에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 문공부장관,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 등을 지낸 바 있다. 정한모의 업적으로서는 『한국대표시인 100인 선집』을 마련하여 한국시문학사의 전체적인 흐름과 경향을 정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1988년 7월에 문화공보부 장관으로 재직하고 있던 시절에 를 용단있게 단행하였다는 점이다. 『한국대표시인 100인 선집』에는 특히 납 월북 시인의 작품을 포함하여 한국 현대시의 정리 작업을 직접 주관하였으며 이로 말미암아 통합된 민족문학사를 열어갈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 선집으로 1920여명의 남북한 문인에 관련된 수백장의 관련 자료가 문학사에 포함될 수 있었다.
정한모는 1991년, 2월 23일 지병인 췌장암으로 서울 창동 한일병원에서 숨을 거둔다. 자신의 병을 알고 나서 카톨릭에 뜻을 두고 있었다고 하는데 유해도 경기도에 있는 카톨릭 묘원에 묻혔다.
2. 작품 경향과 문학적 특성
1) 작품 경향
정한모의 시는 시기별 차이점이 뚜렷하리만큼 그의 시집이 출간될 때마다 시에 대한 주제 의식이 변모되고 있다. 초기, 중기, 후기로 이 의식의 변모를 나눌 수 있다. 초기시는 정한모가 처음 활동을 시작해서 제2시집을 발간하기까지의 시기로 해방 후부터 1960년대까지가 된다. 중기시는 제3시집과 제4시집의 발간이 이루어진 시기로 1961년부터 1975년까지이다. 후기시는 제4시집을 발간한 이후로 설정하여 1976년부터 1991년까지로 나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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