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조사 - 기지시리 보고서 - 마을의 개관, 기지시리 줄다리기의 유래 및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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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현지조사 - 기지시리 보고서 - 마을의 개관, 기지시리 줄다리기의 유래 및 연혁,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기지시리 보고서
1. 조사 장소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기지시리
2. 피조사자
@@@( @@세, 남)
3. 조사 내용
1) 마을의 개관
국수봉(國守峰) 당제(堂祭)와 중요 무형 문화재 제 75호인 줄다리기를 오늘날까지 전승하고 있는 마을로 지리적으로는 당진군의 중앙부에 위치하며 옛날에는 남쪽으로 면천 덕산 홍성 지방과 북쪽으로 한진항을 거쳐 서울로 가는 관도(官道) 변에 있어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고, 큰 장도 섰었으며, 지금도 국도(國道) 32호선이 기지시의 중심을 달리는 교통의 요지이다.
서쪽으로 당진 서산을 거쳐 태안반도의 각 지방과 연결되고, 동남쪽으로는 합덕을 겨쳐 예산 대선과 연결된다. 행정 구역으로는 조선조 초에는 면천군 승선면이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송악산(松嶽山) 이름 따서 송악면 기지시리(機池市里)가 되었으며, 주민의 생활 수단은 농 상 공 등 다양하다.
지명은 송악면 면 소재지가 있는 곳으로 옥녀가 베틀을 놓고 베 짜는 형국이라 해서 베틀 기(機)자와, 베를 짜는데 꾸리를 담궈 놓을 물을 뜻하는 못 지(池) 자에, 시장을 뜻하는 시(市)를 써서 기지시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흥 전문대 교수 김추윤 박사는 기(機)자가 지명에 쓰일 때는 베틀이란 뜻보다 좁은 둑(뚝)을 의미하는 것으로 논두렁이나 밭두렁을 따라 꼬불꼬불하게 뻗은 좁은 둑을 논틀, 밭틀이라고 하듯 틀은 좁은 둑이나 좁은 농경지를 뜻한다고 한다. 기지시의 지형은 낮은 구릉을 정상으로 하여 협소한 골짜기가 동서남북으로 발달하여 예부터 계단식 전답이 발달하였으며, 또한 농경지에 물을 대주는 작은 둑(틀機)으로 만들어진 연못(못池)이 여러 곳에 있었으므로 이것이 기지시의 동명이 되었다고 한다.
옛날 이 기지시 시장은 5일에 두 번, 한달에 12번 섰었다. 한진이나 성구미, 부수리 등에서 잡은 고기가 다 이곳에서 팔려 나갔던 유명한 시장이다. 옥녀봉 옆에는 국수봉이 나란히 솟아 있고 베틀모양으로 안틀못시, 바깥 틀못시 해서 내기(內機, 외기(外機)라고 했으며 서쪽에 대동샘못이 있고 샘건너 동네, 흥척골, 도구머리, 가세울(가위) 동네가 있다 .그리고 북당골 동네가 있고 국도 32호선이 시장 한복판을 지나 베틀 형국을 이룬다고 한다.
국수봉을 중심으로 가학리, 빈촌리, 가지시리가 베츨의 부속품이름으로 지명이 붙어 있다. 흥척동은 흥겹게 자질한다는 곳이고 가마못은 베를 심어서 가마에 찌는 곳이라 했다. 현재 이 마을은 4년마다 줄다리기 행사를 하고 있으며 국사봉이 있고, 그 곳에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
2) 기지시리 줄다리기의 유래 및 연혁
機池市 줄다리기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확실한 기록이나 고증은 없고 지금부터 약 사백 오십 여 년 전부터 시행되었다고 전설로만 내려오고 있다.
이 고을은 약 사백 오십여 년 전에 갖은 厄傷이 발생하고 큰 변이 일어나며 白晝에 맹호가 활동하는 등 괴변이 생기어 많은 인명 피해가 속출하여 인심은 크게 동요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이조 선조 초에 한나루(漢津港)가 하룻밤 사이에 육지가 매몰되어 5개면이 바다가 되고 7개면이 인접군인 牙山, 平澤 등지로 분리 편입되었다 한다. 그 당시에는 17개면이었다. 이 때에 많은 인명이 손실되었으며 재산이 파괴되었고 각종 괴질이 발생하여 만연되었으므로 민심은 더욱 동요되어 온갖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이리하여 이 지역 주민들은 공포와 실의에 빠져 수습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절망에도 기적이 있었다. 이곳 기지시(틀못시)는 沔川邑에서 順城面을 통하여 松嶽面을 경유, 漢津港을 이용 한양에 직통하는 官道로써 많은 과객이 왕래하여 통행이 붐볐다. 이 때에 이곳 시장은 한달에 열 두장이 섰었다. 이 때에 각처에서 모여드는 과객 중에는 보부상 또는 풍수지리학자, 哲人들 간에 나온 전설이 있었다. 李土亭선생, 金福善 등의 偉人, 異人들이 남긴 전설이라고도 하나 기록이 없어 斷定을 할 수가 없다.
전설의 내용은 機池市(틀못시)는 지형이 베틀 形局으로서 玉女織錦하는 형국이라 한다. 그러기 때문에 閏朔드는 해에 온 마을 주민들이 극진한 정성으로 당제를 지내고 줄을 다려야 모든 재난을 몰아내고 예방하며 태평하게 잘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한다. 이때부터 뚜렷한 행사가 시작되었다는데 이를 다시 풀이하면 玉女가 베틀을 놓고 베짜는 형국이라 해서 베틀 기(機), 베를 짜는 데는 꾸리를 담그고 또는 짠 베를 담가 우리고 하는 물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못 지(池)해서 機池市라 命名된 것이라 하며, 市字는 市場을 뜻한다. 줄다리기의 시초는 부녀자로 시발되었으며 삼베 짚 늑다리 칡넝쿨 등으로 꼬아 소규모로 다렸다고 한다. 줄을 다리는 것은 베를 짜서 마전을 하는 것으로서 양쪽에서 다려서 마전하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베를 짜는 데는 기간이 있으므로, 3년 隔하여 돌아오는 閏朔 드는 해에 하는 것은 베 짜는 기한이 완료되었고, 마전을 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와 같이 실행하는 것이다.
이곳 줄다리기하는 장소는 興尺골이라 한다. 지면이 평평하고 장방형이어서 아주 안성맞춤이다. 그 후 점차 마을은 평온해지고, 재난이 방지되고, 虎患은 진압되고, 주민들은 기쁨을 되찾고, 그 효과가 점점 크게 나타났으며,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남녀 노소가 다같이 以心傳心으로 합심하여 내려왔다. 때로는 중단되기도 하였는데 중단되면 또 다시 큰 재난이 발생하여 동요되기 시작하였으므로 다시 복원을 하고 이렇게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