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일신라시대
- 신라의 한 승려가 서기 629년에 일본에서 연분을 만들고 상을 받았으므로 우리나라에서는 그 이전에 이미 연분의 제조가 보편화되었을 것이고, 색분을 만들어 쓰기도 했는데, 색분의 색소는 백합꽃의 붉은 꽃색가루를 모은 것으로 누에고치집에 묻혀서 볼에 발랐다.
- 문무와 6년(666)에 ‘부녀의 모든 복장을 당의 것과 동일하게 하라’는 고지가 내려진 것으로 미루어 통일이후 화장의 경향이 다소 화려해졌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고, 당시 중국의 여인들이 짙은 색조의 화장을 하고 있었으므로 의복과 아울러 화장도 변화했을 것이기 때문이며 통일이후 정국이 안정되고 문물이 융성해져 국민 생활이 윤택해 졌으므로 화장에도 영향을 미쳐 다소 사치해졌을 것이다.
@ 고려시대
- 구초부터 중국의 기녀제도를 본받아 교방을 두는 등 기녀를 제도화시킴으로써 외형상 사치해졌고 내면으로는 탐미주의의 경향이 농후해졌다. (일부 계층에 한정되긴 하지만 신체와 머리카락, 옷에 향을 뿌리거나 발랐으며, 옷에 향을 스미게 하였고, 갖가지 보석방식을 패용, 여러가지 화장품을 겹겹이 진하게 발랐다.)
- ‘고려도경’에 나타난 부인들의 화장을 보면 ‘부인들이 몸치장에 있어 얼굴에 바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분만 바르고 연지를 쓰지 않으며 버들잎 같은 눈썹을 그렸다’고 하는데 고려시대의 화장이 기생의 분대화장과 여염집 부인들의 옅은 화장으로 이원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 손과 얼굴을 부드럽게 하고 희게 하기 위한 화장품으로 보이는 면약이 사용되었으며 염모가 행해졌다.
@ 조선시대
- 내외사상의 팽배로 외모보다 내면의 아름다움, 즉 부덕이 강조되어 평상시에는 화장을 하지 않았으나 손님을 맞을 때나, 나들이할 때는 반드시 화장을 했으나 이때의 화장도 자신이 기녀로 오인받는 것을 우려해 엷게 하였다.
- 조선시대의 화장문화는 여염집 부녀자들보다는 기녀나 궁녀와 같은 특수직 여성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결혼, 외줄의 의식행위로 개념이 바뀌어갔다. 즉, 여염집 여인과 기생의 화장으로 이원화되었다.
- 당시 부녀자들은 색조화장보다는 평상시의 기초화장에 주력함으로써 보다 근본적이고 효과적인 화장을 꽤했다. 따라서 조선시대 여인들의 화장은 진하지 않았지만 그 어느시대보다 부드럽고 세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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