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라다 감상문
내가 본 프리다는 기립 박수를 받아도 괜찮을 만큼 나에게 있어 감동과 웃음과 슬픔과 애틋함, 따뜻함을 보여준 아름다운 영화이다. 그녀의 삶을 캔버스 위에 거침없이 그려내는 영상미는 나를 그 속으로 빠지게 했다.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는 기구하고도 순탄치 않은 생을 살았다. 어려서부터 소아마비를 앓았던 프리다 는 8세에 급기야는 평생 35차례의 수술을 받게 될 치명적인 사고(척추와 오른쪽 다리, 그리고 자궁을 다치는)를 당한다.
영화는 나이를 먹은 프리다 칼로가 침대에 실려 어디론가 가는 첫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는 곧바로 프리다의 어린 시절로 플래시 백 되어 사고 장면과 그림에 몰두하기 시작한 모습, 성장하여 디에고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등을 차례로 보여준다. 그러나 프리다는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뻔한 전기 영화의 구성을 벗어난 보다 자유로운 방식으로 촬영되었다. 이것은 영화무대 연출가 출신인 줄리 태이머가 자신의 장기를 살려 영화 한 컷 한 컷을 화려한 연극 무대처럼 꾸몄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즉 프리다의 끔직한 사고 장면은 설치 미술처럼 그로테스트한 영상으로 처리한다거나, 디에고와의 가장 좋았던 시절들은 칼라풀한 회화처럼 표현한 것, 그리고 유산으로 인해 갈기갈기 찢어진 프리다 칼로의 심정은 그녀의 그림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겨온 비디오 아트와 같은 형식으로 그리고 있는 것. 해서 이전에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접하지 못했던 사람들도 영화를 통해 충분히 그녀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고 영화에 몰두할 수가 있다.
특히, 프리다의 그림이 그녀의 인생을 말해주는 도구가 되어 영화는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림을 보며 그녀가 가졌던 슬픔과 아픔, 그리고 그녀의 소망까지도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영화는 그녀를 이해하고 그녀의 그림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관객들에게 배려한다. 특히, 그림에서 움직이는 인물로 오버랩되는 촬영기술과 독특한 편집은 마치 한편의 CF를 보는 것 처럼 매우 화려하고 독특하다. 강렬한 색채로 가득한 프리다의 집이나 큰 선인장 농장을 지나는 자동차처럼 영화는 그녀의 그림만큼이나 열정적인 멕시코의 풍경들도 잘 담아낸다. 영화를 보는 누구나 강렬함에 매혹될 수 있도록 말이다.
허나, 어느 영화에나 늘 ‘한 부분’은 아쉬움이 남는다. 줄리 태이머의 프리다도 아쉬운 점이 있다.
나는 영화를 보며 강렬한 태양과도 같은 멕시코 그리고 그 속의 프리다의 그림을 감동적으로 만끽할 수 있었지만 그녀의 삶을 감상할 수는 없었다. 오로지 디에고와의 사랑만 느낄 수 있었다고 할까?
그녀를 이야기 할 때 디에고는 빠질 수 없는 인물임에 분명하다. 그녀는 디에고와 평생을 사랑했고 미워했으며 그는 프리다의 삶의 반쪽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로맨스에 중심을 둔 탓인지 프리다 칼로의 내면으로 깊이 파고들지는 못했다. 흔히 프리다 칼로를 이야기함에 있어, 그녀의 예술 세계는 물론 그녀가 가진 정치적 색채를 중요시한다. 영화는 프리다 칼로의 정치성은 물론 디에고 리베라와 함께 했던 중요한 혁명 정신을 과감히 생략해버리고 가는 우를 범한다. 그래서일까? 보면서는 그녀의 열정에 도취되었다고 느꼈으나 막이 내린 극장을 나오며 그녀는 ‘한평생 사랑만 하다 떠난’ 그녀로밖에 기억이 되지 않았다. 왠지 텅 비어버린 듯한 그녀의 느낌이다. 더구나 셀마헤이엑이 연기한 그녀의 젊은 시절은 아픈 몸을 가진 프리다가 아닌 너무나 건강해서(물론 그녀의 영혼은 건강하고 생명력이 넘쳤지만) 교통사고로 불구가 된 몸을 안고 살아가던 그 프리다였는지도 약간은 헷갈렸다. 프리다의 열정적 삶을 말해주기 위함이었겠지만 나름대로 아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줄리 태이머가 만든 ‘프리다‘ 는 프리다 칼로의 그림만큼이나 강렬한 색채를 가진 화면과 그만한 흡인력을 가진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심장이 쿵쾅거리도록 심금을 울리는 사운드트랙이 삼위일체를 이룬 요즘 보기 드물게 완벽한 짜임새를 가진 영화다. 또한 전기영화가 내세우기 일쑤인 어설픈 교훈적 멘트라던가 지나친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은 채 객관적이고 균형적인 시각을 잃지 않는 것 또한 프리다의 매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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