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도시 이야기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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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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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바다의 도시 이야기(海の都の物語 ヴェネツィア共和國の一千年)
바다의 도시이야기는 시오노 나나미의 르네상스 시리즈(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 르네상스의 여인들,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신의 대리인, 바다의 도시 이야기 (上), 바다의 도시 이야기 (下),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를 구입하고 나서 제일 먼저 읽었던 책이다.
이탈리아 반도의 북동부 극단에 위치한 베네치아의 기원은 토사들이 내륙의 여러 지류들에서 아드리아해로 흘러들어 형성된 늪지대(Laguna)였다. 따라서 이곳의 환경은 숲이 무성한 가운데 모기를 비롯한 온갖 해충들이 가득하여 인간이 살기에는 매우 부적합하였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총체적인 위기를 배경으로 북방민족인 훈족(Hun)의 대대적인 공세와 특히 568년에 긴 수염을 휘날리며 문명의 세계에 대한 파괴의 본성을 드러낸 롱고바르디족의 위협은 이곳으로 피신한 베네토(Veneto) 지역의 주민들에게 죽음보다는 자연환경과의 험난한 투쟁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이후 베네치아는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거쳐 697년에는 사실상 공화국의 선포를 의미하는 도제(Doge)를 선출(697)하였는데 이러한 체제는 1797년 나폴레옹의 지배이전까지 1100년간 지속되었다.
기원 후 810년 베네치아는 프랑크 제국의 침입을 물리치고 비잔틴 제국의 보호 하에서 상인들의 자유로운 교역과 무역활동으로 부를 축척하고 밝은 미래를 보장받을 기회를 포착하였다. 또한 공화국의 수도를 리도(Lido)섬에서 지대가 높아 방어에 유리한 리알토(Rialto)로 이전하였으며 제 10대 도제인 파르테치파치오(Partecipazio)의 통치기간에는 국가의 근거를 이곳으로 이전함으로써 오늘날 이 도시의 원형에 초석을 마련하였다. 뿐만 아니라 무력을 동원하여 성인 마르코의 시신을 알렉산드리아에서 강탈하여 도시 전체의 수호성인으로 추대하면서 시신의 안치를 위한 산 마르코(San Marco) 대성당의 건축을 시작하였다.
베네치아의 발전과정에서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10세기말인 976년에는 전통적인 해양정책을 포기하고 내륙으로의 진출을 고집하던 칸디아노(P. Candiano) 도제에 대한 반란으로 폭동이 발생하여 산 마르코 대성당은 물론 그 주변에 있던 300여 가옥이 전소되었다.
그러나 이미 7세기말부터 해양무역의 한 축으로 등장한 베네치아는 아드리아해의 동서중계무역, 즉 선진문화의 지중해 동부지역과 그렇지 못한 서유럽을 연결하는 중계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더구나 11세기말에 시작된 서유럽의 십자군원정을 계기로 지중해 남단과 성지주변의 상권을 독차지하였다. 또한 노령의 도제인 엔리코 단돌로(Enrico Dandolo)는 제 4차 십자군에게 식량과 운송수단을 제공하는 막후교섭을 통해 비잔틴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oli)을 함락하고 동방무역의 실질적인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모국의 번영을 선도하였다. 베네치아는 13세기중반에 내륙의 페라라(Ferrara)를 점령하여 포(Po)강 유역의 상권을 장악한데 이어서, 14세기말까지 지속된 제노바와의 전쟁을 통해 대내외적인 지배체제의 반석을 다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 등의 수많은 건축물을 완성함으로써 15세기에는 이탈리아 반도의 명실상부한 주역으로 등장하였다.
이와 같이 베네치아 공화국은 15-18세기 동안에 투르크 족의 동로마 공략과 프랑스, 스페인 군주국의 팽창에도 불구하고, 17세기 초반 도시인구의 절반을 죽음으로 몰고 간 흑사병의 확산과 18세기 유럽열강의 세력판도가 변화되기 이전까지 지중해와 내륙의 파다나 지역에서 지배권을 유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