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고려의 불교(高麗佛敎)
3. 지눌의 생애
4. 심 성 론
5. 돈오점수
6. 권수정혜결사(勸修定慧結社)
7. 간화론
8. 지눌과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 비교
9. 지눌의 영향
10. 지눌의 저서
참고서적
국사가 태어나기 바로 전의 시대만 하더라도 인종(仁宗:1122-1146)은 훌륭한 내치로써, 유학과 문학을 진작하고 그 스스로 검약(儉約)과 소박(素朴)한 생활을 하였으나 외척(外戚) 이자겸(李資謙)에게 권력을 맡겨 이자겸의 난을 자초하였다. 또한 묘청(妙淸) ․ 백수한(白壽翰)의 음양설(陰陽說)을 혹신(惑信)하여 결국 묘청난(妙淸亂)을 맞이하게 되었고 이것으로 인하여 왕권의 쇠약이 가속화되므로 하극상(下剋上)의 풍조가 조장되어 무인의 난과 지방의 동란까지 일어나게 되었다. 불교와 왕실과의 관계에 있어서 불교는 통일 고려국가를 탄생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고려의 귀족사회가 점점 난숙하여 감에 귀족과 사원과의 유대관계는 더욱 심화되었다. 외척 인주(仁州) 이씨(李氏)와 이에 대한 반대세력인 안산(案山) 김씨(金氏)를 비롯하여 왕실이 각기 법상종(法相宗) 통일신라 때 성립된 불교 종파.
과 화엄종(華嚴宗) 중국 당(唐)나라 때에 성립된 불교의 한 종파.
에 연결되면서 각 사원이나 교단들이 그들 귀족들의 정치적 싸움과 서로 복잡하게 얽혀갔다. 그 예로서 인종 때 이자겸의 난시 그의 아들이 승의장(僧義將)으로서 현화사(玄化寺)로부터 승 300명을 이끌고 궁성 밖에 왔다는 기록을 보아서도 그 당시 승과 왕실의 귀족과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김교빈, 『한국철학 에세이』, 동녘, 2003
예문동양사상연구원 ․ 이덕진 편저, 『한국의 사상가 10人 : 지눌』, 예문서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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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만호, 『나말려초 선종사상사 연구』, 도서출판 이론과 실천,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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