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인재에 대한 세종의 시각
ⅰ. 조선 초기 인재발굴의 어려움
고려 말에 양성되었던 쟁쟁한 인재들은 조선의 창업과 함께 역성혁명의 반대자로 지목되어 제거 되었다. 또한 태종은 왕권의 강화와 중앙집권 확립을 위하여 공신과 외척을 대량으로 제거하였다.
그러다 보니 국가 운영은 그야말로 ‘쓸 만한 사람이 없어서’ 실질적 공백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면 정말 쓸만한 사람이 없었던 것일까? 다른 왕이었다면 앉아서 인재가 없음을 하늘에 한탄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종은 조선에 인재가 없는 것은 실제 인재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나타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실재로 인재들은 백이숙재처럼 숨어버렸고 아직도 그들은 조정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데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인재들이 나타나기에 27년은 결코 긴 세월이 아니었다.
ⅱ. 변계량
세종이 어디서 인재를 구해야 할지 막막해 할때 나타난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변계량이었다. 그는 조선의 대학자이자 인사 분야의 최고 전문가였다. 그런 그가 세종의 국가 경영, 특히 인재경영에 큰 도움을 실어주었다. 고려 말 과거제도가 문란해져 있었는데 변계량이 시관(試官)으로 있는 동안은 인재를 뽑는 일이 지극히 공정하여 졌다. 오로지 공평무사하게 인재를 등용한 결과, 김숙자를 통해 김종직, 이황 등의 명유가 발탁되게 하였다. 이렇게 변계량의 주도하에 세종은 참신하면서도 열의에 불타는 새로운 인재들을 발굴할 수 있었다.
ⅲ. 인재를 보는 세종의 시각
재미있는 사실은 세종 때에 공신(功臣)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종의 곁에 충실한 인재가 없었다는 것일까? 여기서 공신은 국가에 특별히 환란이 있어서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공로를 인정해줄 때 생기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공신이라 함은 어지러운 국가 경영 환경 하에서 생기는 것이다. 이로써 세종시대는 국가 경영이 매우 안정되어 있었고, 나아가 개인적 영달을 꾀하기 위한 간교한 책략 또한 없었다는 이야기와 같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던 것일까? 이것은 혼란을 틈타 세력을 장악하려는 조정 내 관리계급의 음모와 술수가 먹혀들어갈 공간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종이 인재를 알아보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에 공정성과 도덕성, 합리성에 근거한 인사정책이 수반되었을 것이다. 다음은 세종과 강희맹의 대화내용이다.
세종: “인재는 세상 모든 나라의 가장 중요한 보배이다. 인재의 근원은 마음의 기질에서 나오고, 마음의 기질은 정치적 교화로 양성된다. 이처럼 마음의 기질과 정치적 교화는 상호 변화함으로써,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나뉜다. 지금은 임금과 신하가 함께 경계하면서, 날마다 조심하고 근심하며 부지런히 노력할 때이다. 인재를 등용하고, 인재를 양성하며, 인재를 분멸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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