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개인 브랜드조사 김영 세이노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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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국내 개인 브랜드조사 김영 세이노 디자인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6세 때 친구 집에서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이라는 잡지를 보게 되었는데, 여기서 그는 자신의 생각으로 창조된, 미래를 위한 상품을 그려내는 일, 생각을 그리는 작업의 매력을 깨닫게 된다. 디자인이라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물건이 수많은 사람을 즐겁고 유쾌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디자인이라는 작업에 강하게 매료되었고, 이러한 강렬한 체험이 그를 미술대학 산업디자인학과에 진학하게 했고 디자인 선진국인 미국으로 가 디자인을 공부하게 이끌었다. 이후에도 그는 열 여섯 살에 다시 태어났다고 말하곤 한다.
2. 과정
부모님과 선생님의 완강한 반대를 뿌리치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산업디자인학과에 진학하였고 디자인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이라는 생각을 굳히고 그 후 미국에 유학해서 일리노이 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에서 학사학위와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멜 볼트 어소시에이츠(Mel Boldte and Associates)’, ‘해리 앤드 어소시에이츠(Hari and Associates)’ 등의 디자인컨설팅회사에서 일하다가 일리노이 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로 임용되었으나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일보다 직접 디자인하는 일이 더 매력적이라고 판단되어 안정적인 교수직을 그만두고 당시 실리콘밸리 최대의 디자인 회사였던 미국 GVO 사에서 프로덕트 디자인 매니저로 일하기도 하였다.
3. 이노디자인의 탄생
이노디자인은 1986년 실리콘밸리 산타클라라의 조그만 사무실에서 시작되었다. 처음 사업자금은 10만 달러 정도였고, 3천 달러로 사무실을 임대하고 사업체 등록을 했다. 처음 직원은 제자인 데이비드 스키너 한 명이었는데 곧 두 명의 디자이너가 더 들어왔다.
그로부터 6년 전 ‘해리 앤드 어소시에이츠’에서 근무하던 김영세 씨는 자신만의 브랜드에 대한 꿈을 키우고 있었다. 이는 당시 실리콘밸리에 강하게 불던 창업 바람의 영향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의견이 최대한 반영되는 환경 속에서 자신의 디자인 세계를 펼쳐보겠다는 욕구가 강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용된 입장의 디자이너로서 책상에 앉아 공상을 하며 노트에 이것 저것 끄적거리는데 갑자기 INNO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평소 좋아하던 단어인 ‘INNOVATION’이란 단어에서 나름대로 창조된 단어인 ‘INNO’를 그는 언젠가 자신이 갖게 될 회사의 이름으로 결정했다. 그와 동시에 사각형과 삼각형, 그리고 원을 이용한 로고가 직감적으로 떠올랐다. 그는 이를 스케치하여 회사 설립 시까지 6년간 간직하였다.
4. 시행착오
그가 이노에서 처음 시도한 일은 여행용 골프가방인 ‘프로텍’ 디자인이었다. 평소 여행과 골프를 즐겼던 그는 여행을 하게 되면 골프가방을 비행기에 싣게 되면서 고급 골프 클럽이 망가지곤 했던 경험을 몇 번 하고 나서 직접 가방을 디자인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 없는 신상품을 탄생시킨다는 생각에 너무 흥분한 나머지 직접 금형투자, 생산에까지 직접 뛰어들었는데 판매에 대한 경험부족과 판매망 확보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다. 결국 생산 판매 계획을 취소하고 투자 자금만이라도 회수하기 위해 프로텍을 라이선싱하기로 하였다.
발로 뛰어다닌 끝에 다행히 관심을 가진 여러 회사를 만나 상품화 되고 시장에서 인정받게 되었고 프로텍이라는 제품은 결과적으로 이노디자인 최초의 로열티 라이센싱 협력 파트너십 구축으로 디자이너 브랜드의 성공을 위한 비즈니스 전략 모델을 정립하게 되었다. 프로텍 디자인은 1991년 권위있는 디자인 상인 IDEA에서 동상을 수상하고「비즈니스 위크」로부터 1990년 최우수 제품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