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와 문화제도 의문 화화 경제학개론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우리가 제도와 문화에 대해서 알아보고 논의하고자 한 것은, ‘제도가 어떻게 문화와 인식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는가?’이다.
우린 교수님이 던지셨던 여러 논점 중에 자동차 핸들의 위치 차이에 주목했다. 동일한 나라로부터 제도가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자동차 핸들의 위치는 다르게 된 것일까? 이러한 제도가 의도했던 것은 무엇일까? 또는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타난 그 결과가 어떤 문화적 형태를 취하고 있을까?
그래서 우린 제도가 문화로 파생되어진 사례를 몇 가지 찾아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 사례를 통해 제도가 문화화 된 형태와 그 영향에 대해 분석해 보기로 했다.
제도는 문화의 뿌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문화들 중 일부는 제도가 문화화 된 경우가 있다. 사상/종교가 국가의 문화를 형성 하게 된 사례가 그 예이다.
중세시대에 카톨릭이 국교로 지정되면서 당시 사회와 문화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국가라는 것이 존재하긴 했지만 장원 중심 사회라는 특성상 국가가 국민들에게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의 크기가 작았다. 즉 중앙 집중적인 정부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국교는 유일하게 범장원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고, 어떻게 보면 과거의 제도라고 해석 할 수도 있으며, 이 국교라는 제도는 약한 국가 권력의 빈자리를 대신했다.
중세시대 공동체의 중요한 행사인 축제, 혼인, 장례 등은 모두 교회를 통해 수행하였다. 교회는 장원 공동체의 핵심적인 역학을 하였는데, 모든 계급 - 농노까지도 아우르는 공동체의 기반이었다. 농노의 방목, 씨뿌리기, 수확, 세금 내는 날 등은 모두 성서 내용에 맞춰졌던 것이다. 또 다른 계급인 기사에겐 ‘정의를 사랑하는 성실한 전사’라는 의무가 주어지기도 하였다. 이것은 과거에서 그치지 않고 지금까지도 많이 남아 있어, 현재 유럽 문화의 기반이 되고 있다.
비슷한 예로 한국의 유교를 들 수가 있다. 유교는 조선시대 이성계가 유교를 정치의 사상적 기반으로 삼으면서 본격적인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여성들은 유교의 일곱 가지 덕목에 맞춰 평가되었고 조선후기에 편찬된 [경국대전], [속대전]은 가장이 자신의 직계가족원들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규정함으로써 가부장권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주자가례]의 정책적 시행은 제사상속을 부계로 제한하여 모계혈통의 사회적 지위를 점점 낮추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렇게 한국 사회에 장남 우대, 모계 차별이 굳어진 것이다.
위 사례들은 제도가 되어 버렸던 문화의 사상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사회적 영향력을 무시한 제도정책 수정은 혼란을 가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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