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통화지역 유적지 조사
[그림1] 태왕릉의 모습
태왕릉의 한 변 길이는 63m, 널방(玄室)은 1매석(枚石)으로 덮인 동서 3m, 남북 3.4m, 천장 높이 18m. 널방 위쪽 절반이 파괴되어 원형을 알아보기 어렵지만, 본래는 광대한 면적에 자갈을 깔아 묘역(墓域)을 정하고 건설한 돌무덤이다. 봉석(封石) 사면기부(四面基部)에 커다란 자연석을 전후면 각 6개, 좌우면 각 5개씩 석축에 기대어 세워놓는 등 장군총(將軍塚)과 같은 구조의 고분(古墳)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평면적이 장군총에 비해 약 4배나 되고,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에서 남서쪽 500m도 안 되는 거리에 있기 때문에, 광개토대왕릉이라고 주장하는 설도 있다. 하지만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이렇게 크고 웅장한 태왕릉의 기단부및 각층의 계단이 무너졌기 때문에, 그저 그 모습을 추측 할 수 밖에 없고, 현재는 조그만 돌산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자갈 동산으로 변해버린 태왕릉에서는 가끔 기와편 (瓦片) ·도자기편 (陶片)이 섞여 나오고 있고, 오직 거대한 호분석이 무덤의 수호신처럼 서 있으며, 멀리 압록강의 바람이 흩어진 자갈 위의 먼지를 벗겨주고 있을 뿐이다.
※참고자료:
[1] 신형식,『高句麗史』(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96).
[2] 네이버 백과사전 ‘태왕릉’검색 -
[3] 백도(百度) ‘太王陵’검색
장군총[將軍塚]
중국 길림성(吉林省) 집안현(集安縣)에서 동쪽으로 5km 떨어진 용산 기슭에 자리잡은 장군총은 고구려 석총의 대표적인 유적이며 한국판 피라미드이다. 또한 계단식방단석실묘의 대표적인 형태인데, 이러한 점들 말고도, 고구려의 대표적인 돌무덤으로서 고구려인의 석조예술의 지혜로운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3세기 초부터 427년까지 고구려가 도읍한 지안현 통구평야(通溝平野)에는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와 고구려 최대형 무덤인 태왕릉(太王陵)·사신총(四神塚) 등 석릉과 토분(土墳) 1만 기(基)가 있으나 외형이 거의 완존(完存)한 석릉은 이것뿐이다.
[그림2] 장군총의 모습과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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