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엥겔스의 국가론
3.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4. 결론
5. 주
6. 참고문헌
독일의 서부도시에서 부유한 방적업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엥겔스는 부친의 회사에서 일하기 위해 김나지움을 중퇴하고 독일과 영국에 있는 부친의 회사를 전전했다. 그간에 그는 『국민경제학비판대강』(1844)을 발표하고 『영국노동계급의 상태』(1845)를 집필하는 등 그때까지의 1헤겔좌파의 입장을 급속히 극복해갔다. 마르크스와의 만남은 이후 엥겔스의 생애를 결정하여 두 사람은 이후 48년혁명을 함께 맞았다. 혁명이 패배하자 독일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된 엥겔스는 런던으로 이주하여 『독일농민전쟁』(1850)등을 집필했다. 1850년말부터 다시 맨체스터의 공장에서 근무한 엥겔스는 그후 20년간 사업에 종사하면서 마르크스 일가의 생활을 경제적으로 원조하고 다수의 논문을 썼다. 1870년에 사업에서 손을 뗀 엥겔스는 런던의 마르크스 집 근처로 이사하여 두 사람은 제1 인터내셔널을 비롯한 정치활동, 문필활동에서 한층 긴밀한 협력을 이루었다. 이 시기에 엥겔스는 2『반듀링론』(1878)과 『자연변증법』(1935)등을 집필하였다.
2. 엥겔스의 국가론
엥겔스의 국가론의 중심동기는, 듀링의 "정치적 조건은 경제적 질서의 결정요인이다."라는 명제를 부정하려는 것이었다. 엥겔스는 국가의 기원을 두 가지로 보고 있는데 하나는 경제적 기원이며 또 다른 하나는 제도적 기원이다.
김대웅 옮김, F. 엥겔스(1987) ― 가족국가 사유재산 기원, 아침
남상일 옮김, F. 엥겔스(1989) ― 루드비히 포이에르 바하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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