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의 교육 고구려 백제 신라
ㆍ태학(太學)
고구려의 학교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에 “소수림왕 2년(372)에 태학을 세워 자제를 교육했다.” 고 한 데서 나타난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학교 교육에 관한 기록 중 최초의 것이다. 또한 이 때는 전진(前秦)의 왕 부견(符堅)이 중 순도(順道)를 파견하여 불교의 경문을 전했고, 다음해(373)에는 율령(律令)이 공포되었다. 고구려의 제도는 전진의 영향을 받아 개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삼국사기 기록을 바탕으로 태학 조직에 대해 알아보면 총책임자는 조의두, 가르치는 사람은 박사, 배우는 학생들은 조의선인임을 알 수 있다.
태학의 교육내용은 중국의 기록을 통해 추측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오경(五經 : 시경, 서경, 주역, 예기, 춘추), 삼사(三史 : 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三國志), 진춘추(晋春秋) 등 중국 고대의 경서(經書)와 사서(史書)를 중요한 교재로 하였다고 되어 있다. 기타 중국의 대학에서 가르친 역서(曆書), 의서(醫書), 산서(算書), 악서(樂書), 병서(兵書) 등도 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태학은 고급관리의 양성을 목적으로 귀족의 자제들을 교육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태학은 우리나라 최초의 관학이며 동시에 최초의 고등 교육 기관이라는 교육사적 의의를 갖는다.
ㆍ경당(堂)
고구려에는 사학(私學)으로 경당이 있었다. 경당에서는 독서(讀書)와 습사(習射)를 교육 내용으로 하여 문무를 겸비한 인재를 양성하였다. 고구려의 경당은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에 기록되어 있다. 구당서에서는 “풍속이 서적을 사랑하여 허름한 서민의 집에 이르기까지 거리에 큰 집을 지어 이를 경당이라고 하고, 미혼의 자제들이 여기서 밤낮으로 독서하고 활쏘기를 익힌다. 그들이 읽는 책은 오경(五經)과 사기(史記), 한서(漢書), 범엽(范曄)의 후한서(後漢書), 삼국지(三國志), 옥편(玉篇), 자통(字統), 자림(字林), 그리고 문선(文選)이 있는데 그것을 더욱 아끼고 소중히 여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의 경당은 지방의 촌락에 이르기까지 설치된 사립학교로서 평민의 자제를 교육하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경당은 고구려의 교육기관으로서, 미혼 자제들을 대상으로 문무를 겸비한 교육을 실시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런 점에서 고구려의 경당은 신라의 화랑도와 성격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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