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알 교육의 주체자 함석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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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씨알 교육의 주체자 함석헌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함석헌은 1901년 3월 13일, 평안도 용천에서 아버지 함형택과 어머니 김형도 슬하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함석헌의 아버지 함형택은 탁월한 한의사였다. 함석헌은 아버지가 잘나가는 한의사였지만, “돈을 모으려면 그거 못하겠느냐? 그러나 사람이 그래서는 못쓴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아버지가 결코 속되지 않은 분이었다고 회고한다. 무엇보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선천적인 양심, 이성, 그리고 날카로운 천부적 품성을 물려받았다. 그가 말년에 자신의 생애를 회고하면서 아버지의 ‘날카로운’양심을 강조한 것이 그것을 증명해 준다.
함석헌의 어머지 김형도는 자녀들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그녀는 나이가 오십이 지나서야 한글을 배운 문맹인 이었지만 자녀들에게 예절과 사람됨의 도리를 가르쳐 주었다. 함석헌은 어머니를 자신의 생애와 사상의 원형을 형성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인식하고 있다. 그는 어머니를 생각할 때 맨 먼저 느끼는 것은 “끊임없이 올라가자는‘뜻의 사람이었다고 회고한다. 아마도 그 ’뜻의 사람‘은 ’성서적 입장에서 본‘ 한국역사를 ’뜻으로 본‘역사로 바꾸게 한 기초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그에게 자유와 평등사상에 대해 눈을 뜨게 해 준 어린시절의 일화가 있다. 함석헌은 자신이 주전부리용으로 평소 눈여겨 맡아온 채마밭 오이 하나를 바로 밑의 여동생이 따먹은 사실을 알았다. 화가 난 함석헌은 오남매 중 못난 여동생이므로 더욱 심하게 구박을 했다. 그런데 당연히 장남인 자기편인 줄 알았던 어머니가 뜻밖에도 동생 편을 들어주었다. 어린 시절의 이 사건을 통해 함석헌은 장남의 특권의식과 권위주의에 대한 부끄러움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평생 씨로 살면서 씨의 편에 서서 권위주의에 대해 항거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함석헌의 숙부 함일형은 근대의식을 지닌 지식인이었고, 기독교 신자였다. 함석헌이 기독교와 민족애를 조화롭게 융합하는 능력을 키운 것이나 서구적 민주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도 숙부 함일형 덕분이었다. 또한 함석헌의 가문이 모두 그 지방에서 민족주의 애국운동의 중심이 되었는데 그 역시 함일형의 영향이 컸다. 이처럼 함석헌은 가족으로부터 민주주의, 평등사상의 영향을 받아 그 사상적 토대를 세워 나가게 되었다.
함석헌의 부모는 오늘날의 교육학적 훈육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그에게 자유와 평등사상과 열린 마음, 민주주의의 터를 잡아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양심적이고 , 자주적인 삶은 아들 함석헌에게 씨의 모형을 최초로 심어준 가장 훌륭한 모델이었다. 함일형은 함석헌에게 처음으로 기독교와 민족애, 민주주의를 가르친 중요한 인물이다. 그리고 함일형의 아들 석규, 석은은 함석헌에게 고난의 역사와 고난의 땅에서 사는 법을 가르친 사람들이가. 그들에게 의해 함석헌은 어린 시절부터 기독교 종교교육을 받았고, 3.1운동에 참가할 수 있었으며, 이로서 인생이 새롭게 시작되었다.
Ⅱ.함석헌의 사상적배경과 ‘씨’교육사상
1. 사상적배경
1) 기독교사상 - 전통적 장로교 신앙에서 출발하여 무교회 신앙으로, 다시 퀘이커 신앙으로 그 변화를 거듭하였다. 마지막 퀘이커 신앙에서 받은 영향을 세가지로 나눌수 있다.
①양심적 병역거부운동에서 보이듯이 퀘이커신앙의 평화정신
②퀘이커신앙은 종교의 절대적 진리와 현실적 혹은 상대적 가치를 동등하게 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