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대 교육 주장의 교육이념 사랑으로 이어지는 생명
#165
1. 8대 교육주장에 관해
1921년에 개최된 8대 교육주장강연회는 ‘다이쇼신교육운동’(다이쇼자유교육운동)을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으로서 일본교육사의 텍스트에 반드시 나오는 유명한 대강연회이다. 이 강연회에는 8인의 저명한 교육자가 초청되어 각각 자기 의견을 전개했다. 강연순으로 거론하면 오이카와 헤지(及川平治)의 ‘동적 교육론’, 이나게 긴시치(毛金七)의 ‘창조교육론’, 히구치 초이치(口長市)의 ‘자학교육론’, 데즈카 기시에(手塚岸衛)의 ‘자유교육론’, 가타가미 노부루(片上伸)의 ‘문예교육론’, 치바 메키치(千葉命吉)의 ‘일체충동개만족론(一切衝動皆滿足論)’, 고노 기요마루(河野丸)의 ‘자동교육론’, 오바라 구니요시(小原芳)의 ‘전인교육론’이다. 그들의 강연내용은 이듬해 『8대 교육주장』으로 정리되어 공간됐다.
그런데 이 8대 교육주장 그리고 8대 교육주장강연회에 관한 연구는 거의 없다. 확실히 8인의 강연자의 이름이나 강연제목은 잘 알려져 있지만 종래 그들의 교육사상에 관한 연구는 적으며 강연회 그 자체의 실태에 관해서도 밝혀져 있지 않았다. 제2부에서는 논자 8인의 주장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들의 사상에 통저하고 있는 이념을 밝히는 것으로서 다이쇼신교육운동의 사상사적 의의를 고찰하고 싶다. 이를 위해 본장에서는 먼저 다이쇼신교육운동의 상징으로서 그 열광하는 모습이 강조되어 왔던 이 강습회의 실태를 가능한 한 밝히고 교육사상에 있어 자리매김을 확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자. 그 다음에 강연회에서 제시된 각 논자의 사상을 개관하고 기본적인 시각을 정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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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 강연회’
먼저 처음으로 확인해야 하는 것은 이른바 8대 교육주장 강연회는 개최시의 정식명칭이 아니라는 점이다. ‘8대 교육주장’이 발표된 강연회로서 후에 그렇게 불리게 된 것이다. 이 강연회는 1921년 8월에 대일본학술협회가 주최한 ‘교육학술연구대회’이며 8월 1일부터 8월 8일까지 매일 1명씩 강연자가 교체되어 8일간 행해졌다. 장소는 도쿄 고이시카와(小石川) 오쓰카정(大塚町)의 도쿄고등사범학교 강당이며 저녁 6시부터 시작되어 11시무렵까지 연일 2천명 이상의 청중을 모았다고 한다. 후술하는 것처럼 실제로는 회장(會場)의 형편으로 별도의 장소에서 별도의 시간에 개최된 날도 있었다. 강연자는 등장순으로 오이카와 헤지, 이나게 긴시치, 히구치 초이치, 데즈카 기시에, 가타가미 노부루, 치바 메키치, 고노 기요마루, 오바라 구니요시이다. 주최자에 의하면 이 8인은 ‘교육교수개조주장의 8명의 신인’ 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어떻게 해서 8인이 선택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불가사의한 것은 이 연구대회를 개최한 대일본학술협회가 발행한 잡지 『교육학술계』 이외의 잡지를 조사해도 당시 이 강연회를 보도한 기사가 거의 없다. 확실히 강연자로서 당시의 다이쇼교육의 대표적인 담당자가 전원 등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라여자고등사범학교의 기노시타 다케지(木下竹次)나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의 기타자와 다네이치(北種一), 제국소학교의 니시야마 데쓰지(西山哲治)나 세케소학교(成蹊小學校)의 나카무라 하루지(中村春二) 등 유명한 인물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는 해도 8인의 안에는 자유교육을 창도한 데즈카 기시에나 분단식 교육법의 오이카와 헤지, 몬테소리교육법의 고노 기요마루, 독창주의교육론의 치바 메키치, 전인교육론의 오바라 구니요시 등 당시 각 교육잡지에 기고하여 여러 강연회에서 인기 있었던 신진기예의 논자가 이름을 늘어놓고 있으며 신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있어 비상히 매력적인 강연회였던 것은 틀림없다. 그럼에도 『교육학술계』 이외의 잡지에서는 개별 논자의 주장을 비평한 기사는 산견되지만 이 강연회 자체에 관해 평한 기사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이는 이 강연회가 종래의 ‘관제강연회’에 대항하여 기획된 ‘혁명적 강연회’였던 것과 무관계는 아닐 것이다. 즉 당시의 교육저널리스트는 이 ‘혁명적 강연회’에 경탄해면서도 굳이 이를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167
어쨌든 이어서 이 ‘혁명적 강연회’가 어떻게 기획되고 운영됐는지 가능한 한 그 사실을 밝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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