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교육의 프로그램은 영아(兒)프로그램, 유아원 ·유치원프로그램, 초등학교 저학년 및 탁아(child care)프로그램 등 다양하다. 세계적인 추세를 보면, 반일(半日) 프로그램으로서 유치원에서 실시하는 것과 전일(全日) 프로그램으로서 직장에 나가는 어머니와 유아를 위하여 탁아소에서 실시하는 프로그램이 가장 흔한데, 전자는 유아의 교육을 위주로 하고, 후자는 유아를 보호하는 건강과 안전을 위주로 한다. 한편, 유아교육의 목적은 유아의 신체 ·정서 ·사회성 ·언어 및 인지발달을 도모하는 교육환경을 제공해 줌으로써 전인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있다.
2. 유아교육의 제도적 발전을 위한 노력
일제 점령기를 지나는 동안 민족 교육 운동으로 역할을 다하였던 유아교육은 광복 후, 대한민국의 교육제도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알리고 체제적ㆍ제도적으로 정비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광복 수 20년 동안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던 사회의 물결에 휩쓸려 유아교육은 발전 없이 부진한 시기를 겪어야만 했다. 특히 인식의 부족과 정부의 무관심으로 다른 교육기관에 비해 더욱 방치되었다. 유치원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변화되기 시작한 것은197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먼저, 전문적 유아교육의 실천을 위해 전문가들은 유치원 교사 양성 기관을 설립, 격상시키는 노력을 하였다. 1950년 이화여자대학교에서는 유아교사 양성 연한을 4년으로 연장하여 정규 종합대학 과정으로 격상시켰고, 1959년에는 중앙대학교에도 4년제 유아교사 양성과정을 개설하였다. 또한 2년제 초급대학과 보육학교가 설립되어 2년제, 4년제의 대학 수준에서 유아교사를 양성하는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또한 유아교육 전문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노력은 민간교원단체의 활동에 의해서도 이루어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교원 단체는 조선보육협회로 이미 광복 이전에 존재하고 있었으나 1946년 대한 유치원교육협회로 재조직되었고, 1948년에는 한국어린이교육협회가 미국의 국제어린이교육협회의 지부로 창립되었다. 또한 1965년에는 한국유아교육협회가, 1967년에는 한국기독교유아교육협회가 발족되는 등 1960년대 후반부터 민간 교원단체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졌다. 1969년 처음으로 제정된 유치원교육과정은 Dewey로 대표되는 진보주의 이론을 중심으로 경험중심, 생활중심, 흥미중심의 교육을 주장하는 경험중심 교육과정의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1970년대-
이러한 노력은 1970년대에도 지속되었다. 가장 큰 예로 유아교육 관련 전문가들을 중심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한국유아교육학회의 발족을 들 수 있다. 본 학회는 1976년 창립된 이후 미국의 헤드 스타트(Head Start)를 위시한 세계 유아교육의 동향을 우리나라에 알리고 유아교육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는 장(場)의 역할을 하였다. 1970년대의 또 하나의 변화는 1976년에 서울특별시 교육위원회가 산하 4개 교육구청에 공립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을 설립한 것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이 1970년대에는 한국유아교육학회와 공립 유치원 설립을 통해 유아교육의 중요성을 일반인에게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바로 1980년대 유아교육진흥정책의 기반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1980년대-
1980년대는 유아교육에 있어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룬 중요한 시기이다. 유아교육기관의 수나 취원율이 급격히 증가하였을 뿐만 아니라 유치원이나 유치원교사수가 증가하였고, 대학 교육과정에 유아교육과를 설치할 것이 권장되었다. 그 결과 전문대학 및 대학교의 유아교육과가 수적으로 대폭 늘어났다. 이러한 성장은 1982년 12월 31일 제정, 공포된 ‘유아교육진흥법’의 영향이다. 이 후 유아교육과 보육을 통합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1991년 ‘영유아보호법’의 제정으로 유아교육은 이원화 체제로 바뀌었으나 1980년대의 유아교육 진흥을 기점으로 하여 유아교육의 저변 확대가 가능했다고 본다.
-19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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