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가나 중세사가는 다루기 쉬운 한 묶음의 역사적 사실들을 오랫동안 자기들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도록 허용해왔던 그 거대한 선별과정에 감사해야 한다. 역사가는 자신의 시대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무지를 스스로 개발해야한다. 소수의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여 그것들을 역사의 사실로 전환시켜야 하고 이와 동시에 수많은 하찮은 사실을 비역사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추려내야 하는 이중의 임무를 가지고 있다. 액턴은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축적하는 것이 역사의 기초라는 신념, 사실이란 스스로 말하며 사실은 아무리 많아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신념, 그 시대에는 너무나 분명한 것이어서 거의 모든 역사가들에게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끔 만든 그런 신념이었다. 19세기 사실 숭배는 문서들에 대한 숭배로 완성되었고 정당화되었다. 문서들은 사실의 신전안에 있는 약속의 상자였다. 사실은 문서 안에 있건 없건 역사가에 의해 처리되어야만 하며, 그런 후에라야 비로소 역사가는 그것들을 어떻게든 이용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역사가가 사실들을 이용하는 것이 곧 그 처리과정인 것이다.
역사철학이라는 용어는 볼테르가 만든 것인데, 그 이후 이 용어는 다양한 뜻으로 사용되어왔다. 서유럽의 지식인들에게는 19세기는 자신감과 낙관주의를 한껏 드러내고 있었던 편안한 시대였다. 그러니만큼 그것들에 관해서 귀찮은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대답하는 경향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는 천진난만한 시대였으며, 그래서 역사가들은 자신들을 가려줄 한조각의 철학도 걸치지 않고서 역사의 신 앞에서 벌거벗은채로 부끄러움도 없이 에덴동산을 돌아다녔다. 1910년 미국의 역사가 칼 배커는 일부러 도전적인 언사로 ‘어떤 역사가에게든 역사의 사실들을 자신이 그것들을 창조할 때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크로체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철학자이며 역사가인 콜링우드에게 영향을 미쳤는데, 콜링우드의 견해는 역사철학은 ‘과거 그 자체’에 관한 것이라거나‘과거 그 자체에 대한 역사가의 사유’에 관한것이 아니라‘상호 관련되는 그 두 가지’에 관한 것이다. ‘역사가가 연구는 과거는 죽은 과거가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현재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과거이다’라고 했고 오크셔트 교수는 ‘역사란 역사가의 경험이다. 역사는 역사가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이 비판은 관과 되고있는 몇 가지 진리들을 드러내고 있다. 첫째 역사의 사실들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결코‘순수한’ 것으로 다가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역사가는 자신이 다루고 잇는 사람들의 마음, 그들의 행위의 배후에 있는 생각을 상상적으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세 번째로 우리는 오로지 현재의 눈을 통해서만 과거를 조망할 수 있고 과거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역사의 사실에 대한 역사가의 관계를 검토해온 우리는 분명히 불안정한 상태, 즉 역사란 사실을 객관적으로 편찬하는것이며 해석보다는 사실이 무조건 우월하다고 보는 타당치 못한 역사이론의 스킬라와 역사란 해석과정을 통해서 역사의 사실들을 확정하고 지배하는 역사가의 정신의 주관적 산물이라는 마찬가지로 타당치 못한 역사이론의 카리디브스 사이에서, 과거에 무게중심을 두는 역사관과 현재에 무게중심을 두는 역사관 사이에서 어렵사리 항해하는 그런 상태에 놓이게 된 셈이다.
역사가는 사실의 잠정적인 선택과 그 선택을 이끌어준 잠정적인 해석에서 출발한다. 그 두 가지는 이러저러한 상호작용을 통해서 미묘한 그리고 아마도 얼마간 의식되지 못하는 변화들을 겪는다. 따라서‘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현재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이다
2. 사회와 개인
어느 것이 우선인가 하는 문제는 논리적인 문제로 다루든 역사적인 문제로 다루든, 똑같이 일방적인 그 반대편의 의견에 의해서 틀림없이 수정될 터이므로, 여러분은 그 문제에 관해서 어느 쪽으로든 의견을 제시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태어나자마자 세계는 우리에게 작용하기 시작하여 우리를 단순히 생물학적인 단위로부터 사회적인 단위로 변화시킨다.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 환경도 인간 사유의 성격을 결정하는 데에 기여한다. 그 밖의 모든 행위에도 개인이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이 어떤 식으로든 내포되어 있다. 인류학자들은 흔히 원시인은 문명인보다 덜 개인적이며 사회에 의해서 더 완전하게 형성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회와 교육의 민족적 배경이 다른 데에서 비롯되는 민족성의 차이는 부정하기 어렵다. 개인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에 대한, 혹은 달리 말하자면 사회가 구성되는 방식에 대한 태도에서의 차이로 나타나는데,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전체로서 사회간의 차이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결국 개개의 차이를 연구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 매우 분명한 진리들에 관해서는, 서구세계가 겨우 막 빠져나오고 있는 그 유별나고 예외적인 역사적 시기 때문에 그것들이 모호하게 되어버리지만 않았던들, 길게 이야기할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다. 하나의 사회혁명이 새로운 사회집단을 권력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 혁명은 , 언제나 그랬듯이, 개인을 통해서 그리고 개인의 발전에 새로운 기회들을 제공함으로써 움직여 나갔다. 새로운 사회질서의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진취성이 수행하는 사회질서 안에서의 역할을 열렬히 강조했다. 그러나 그 전체 과정은 역사적 발전의 어떤 특정한 단계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회적 과정이었으며, 사회에 대한 개인의 반역이라든가 사회적 속박으로부터의 개인의 해방이라는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는 과정은 아니다.
역사가는 한 사람의 개인이다. 다른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역시 사회적 현상으로서,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의 산물인 동시에 그 사회의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대변자이다. 우리는 때때로 역사의 경로를‘움직이는 행렬’이라고 말한다. 역사가는 역사의 일부이다 그 행렬 속에서 그가 있는 그 지점이 과거에 대한 그의 시각을 결정한다. 이 이치는 역사가가 다루는 시대가 그 자신의 시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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