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서구에서 비서구권으로 선교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선교는 서구를 포함한 모든
지역이 총체적으로 연합하여 이루어지는 글로벌적이고, 서구식 선교(westernized mission)가 아닌 세계화된 선교(internationalized mission)가 되어야 한다.
기독교 인구가 비서구에서 증가하면서 선교도 갈수록 비서구 선교사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2000년에는 선교사 숫자가 420,000명이고 이들 중 서구 선교사는 단지 12-15%에 불과하다. 한국교회는 12,000명 이상의 선교사를 파송한 선교 대국으로 자부한다. 물론 경제적으로 자주성을 갖고 있으나 정보, 이론, 선교전략은 서구에 너무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21세기 글로벌 선교운동의 미래에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미전도 종족들에 대한 선교가 우선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21세기는 미전도 종족에 우선순위를 두고 세계선교를 진행하는 미전도 종족 선교의 시대임이 분명하다. 오늘날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흥분은 되어 있으나 아직도 현실은 냉랭한 채로 머물고 있다.
선교통계학자 바렛(David Barrett)에 의하면 1998년에 대략 11,874개의 인종-언어집단이 있는데 그 중에 3,915개 집단은 전혀 복음이 전해지지 아니했다고 한다. 미전도 종족이 가장 많은 문화권은 이슬람으로 3,700인종 그룹(13억)이다. 다음으로 힌두교 문화권에 2,700인종 그룹(8억7천), 부족인종들 중에 2,300인종 그룹(1억 5천)이며, 불교 문화권에 1,000인종 그룹(3억7천) 등이다. 현재 미전도 종족을 약 2,400개로 보고 있으며, 미전도 인구를 약 18억으로 추정하며 이는 세계 인구의 약 27%에 해당된다. 성경번역이 되지 않은 종족의 언어를 4,000개로 본다. 현재 비기독교 세계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숫자는 하루에 129,000명, 일 년에 47,000,000명 늘어나고 있다. 분명히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완성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듣게 하는 것이라면 지상명령이 완성된 곳은 어느 곳도 없다.
1. 선교의 정의와 목적
복음주의 진영의 경우 1974년 로잔 제1차 대회 전만 해도 선교는 문화적 장벽을 넘어서 복음을 전파할 목적으로 사역을 하는 행위로 받아들였다. 로잔언약은 “사람과의 화해가 하나님과의 화해는 아니고 사회적 관심이 복음전파는 아니며 정치적 해방이 구원은 아니다”라는 단서는 달았지만 “복음전파와 사회, 정치적 개입 모두 우리 기독교인의 의무”라고 선언했다. 그 후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선교가 복음 선포와 사회봉사로 매듭이 지어졌다고 본다. 선교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여전히 핵심이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적인 변화와 책임을 지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복음을 중심한 수직적 선교개념과 사람을 중심한 수평적 선교개념을 종합하여 영육의 총체적 구원(total salvation)을 강조하는 통전적 선교(holistic mission)을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신학을 인간학으로 대치하려는 극단적 자유주의와 인본주의자들은 여전히 복음을 사회구원으로 이해하고 있다.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는 “선교학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을 개종으로 이끄는 하나님이 정하신 가장 유익한 방법에 대한 탐구이다”, 베르카일(Johannes Verkuyl)은 “선교학은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가져오기 위해 일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의 구원활동에 대한 연구이다”라고, 시카고 신학교 선교학 교수 비버(Pierce Beaver)는 “18세기 이전까지만 하여도 선교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에 두었으며 18세기 이후의 부흥운동과 더불어 회심이 선교의 주목적으로 전환되었다”라고 하였다.
사실 선교는 비그리스도인 즉 기독교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서 기독교의 확장을 의미한다. 선교는 복음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거나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에게 선교기관 혹은 자발적 단체를 통해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의 의식적인 노력이다. 선교는 교회의 완전한 표현으로서 교회 그 자체 즉 세상과 함께하는 교회의 정체성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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