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받은 계층의 부상
미국의 엘리트가 혈통에 의거하던 시대에 이 지면에서 강조된 것은 고귀한 출생과 가문이었으나 오늘날의 미국에서는 재능과 사교성이 엘리트계급에 속하기 위한 요소로 꼽힌다. 출신대학, 대학원 학위, 사회 경력, 그리고 부모의 직업이 오늘날 미국의 상류계급을 특징짓는 요소라는 것이다. 오늘날 이 지면에 소개되는 그들은 청춘시절 다양한 과외 및 봉사활동을 했고, 우리 사회가 10대들에게 원하는 거의 모든 것들을 했던 인물들이다. 그들의 대다수는 상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고 부모의 직업들은 대부분 전문직에 종사하는 하는 등 부모의 돈보다는 부모의 머리가 중요해진 것이다.
이들은 또한 ‘양육자’와‘포식자’의 두 부류에 속해 있으며 양육자는 아이디어를 다루는 일을 하거나 남들과 협력하는 일을 주로 하며 포식자는 돈을 다루거나 경쟁을 통해 남들을 잡아먹는 일을 많이 한다. 이들 실력파들은 경력을 쌓는 데 엄청난 시간을 들이고 무엇보다 개인적인 성공에서 가장 큰 만족을 느끼지만 (뉴욕 타임스)의 그 지면에서는 그들이 사실은 야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들은 사실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로서 어느 누구 못지않게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엘리트의 개념의 변화 중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인 것이다. 성공과 야망만을 목표로 하는 조금은 기계적이고 감정이 없는 인간이 아닌 그들도 자유과 멋과 재미를 추구하는 보다 감성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1950년대
1950년대 후반에 이 지면은 차분하고 좀 더 정적인 분위기가 강했다. 지면에는 가문과 연줄을 강조하였으며 이는 선조들의 이름과 그들의 출신 대학과 출신 사립학교가 예외 없이 언급되었다. 신랑이 가입해 있는 클럽은 물론 신부가 언제 어떻게 사교계에 데뷔하기 시작해 어떤 여성 클럽들에 가입해 있는지를 밝혔다. 요컨대 당시의 (뉴욕 타임스) 웨딩 섹션은 극히 한정된 그룹들만의 세계였던 것이다. 당시 남자들은 사관학교 경력이 동부 연안의 기득권 계층에게는 여전히 중요한 요소였고, 군 복무는 엘리트 청년들에게 의무와도 같았던 점은 오늘날의 엘리트와는 다른 모습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당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워스프(백인 앵글로 색슨계 신교도)중심 이었다. 또한 당시는 전통적인 유럽식 문화의 분위기가 아주 강하여 젋음 남자들은 희랍어를 여자들은 귀족적 의례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들이 정치 경제 군사 엘리트의 3/4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워스프들의 심미적 감각은 대체로 한심한 수준이었고, 그들의 대화에 지성과 재치는 흔적도 없었다. 이들의 특징 중 오늘날 우리가 받아들이기에 가장 힘든 두 가지는 노골적인 엘리트주의 와 분리주의이다. 50년대의 기득권 계층은 여전히 반유태주의 인종주의 성차별 그 밖에 좋은 가문 출신이 아닌 사람들의 진입을 막는 수많은 울타리를 쳐 놓고 있었다. 그들은 지식인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의 지위는 지성이 아니라 ‘동물적인 매력과 돈’에서 나왔다. 그렇지만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존경할 만한 점이 있기도 하다. 그것은 워스프 기득권 계층의 공공 복무 윤리인 것이다. 그들은 또한 과묵적 성격으로 이후 세대들이 가지고 있던 반항심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들이 이른바 ‘미국의세기’에 미국을 이끌었고, 오늘날 교육받은 엘리트가 유쾌하게 장악하고 있는 많은 기관들을 설립했다는 점이다.
-전환점
워스프 중심의 기득권 계층에서 교육받은 엘리트로의 전환은 바로 대학입학위원회에 의해서 촉발되었다. 입학 담당자들이 워스프 기득권계층을 무너뜨린 것이다. 하버드를 중심으로 주요 대학들이 SAT점수가 훨씬 높았던 전국의 영리한 학생들을 받아들이는 학교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제임스 브라이언트 코넌트라는 하버드 대학의 총장을 지냈던 그와 그가 영입하였던 헨리 촌시에 의한 것이었다. 그들이 꿈꾼 것은 표준화된 시험과 사회과학의 발전이었고 시험이야 말로 사람들의 능력을 측정하고 사회를 더 공정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운영하는 멋진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그들의 생각은 미국 지식인 계층이 자신감넘쳐 하던 시기로 어느 때보다 잘 받아들여졌다. 소련의 스푸트니크 위성 발사는 교육에 미국의 사활이 달려있다는 분위기를 확산시킨 사례였으며 이에 지식인들은 스스로를 한층 더 중요한 존재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전에는 워스프 엘리트가 고등 교육을 지배했고, 대학 교육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이 시기가 끝날 무렵에 좋은 가문의 워스프들은 더 이상 고등 교육을 지배하지 않았고 교육받은 계층도 극히 일부만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교육 받은 계층의 급속한 팽창은 미국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식엘리트들은 그들이 차지하고 싶어 하는 파워와 특권의 자리를 워스프가 장악하고 있는 것에 반발하여 구 체제를 끝장내려 했던 것이며 그들은 워스프의 방식을 파괴하고 개인적 능력에 기반 하는 당신의 방식을 전파하려 하였다. 넓은 관점에서 국가의 사회적 특성을 바꾸려 한 것이며 인재들이 부상은 기대 증가의 전형적인 혁명을 낳았다. 60년대 후반의 사회혁명은 사회적 경향에 대한 논리적 반응이었던 것이다.
-1960
영화 ‘졸업’을 통해 이 시대상을 설명하려 한다. ‘60년대’라는 말로 통칭되는 교육받은 계층의 반란은 다방면에 걸쳐서 나타났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60년대의 문화적 진보주의는 성공에 대한 기존의 인식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기득권층의 파워를 무력화 시키려는 시도였다. 또한 구질서를 새로운 사회적 계율로 대체하려는 새로운 문화적 시도이기도 했다.60년대 진보주의자들은 일반적인 성공의 기준을 거부했다. 또한 그들은 신교도 엘리트가 높이 평가하는 것들을 폄하하고 싶어 했다. 그들은 보헤미안적인 자유분방한 자기표현을 좋아했고, 이전 엘리트의 무미건조한 자기 통제를 경멸했다. 이 당시 웨딩 섹션은 지면이 축소되는 등 이전 시대와는 대조를 보이고 있었다. ‘졸업’의 마지막 장면이 가장 대표적인 당시의 관념을 보여준다. 여주인공은 결혼을 하기러 했던 전형적인 워스프 출신의 남자를 버리고 식장에 찾아온 남자주인공을 따라 나선다. 그러나 기분 좋았던 그들의 표정이 서서히 우울한 표정으로 바뀌며 나중에는 약간 겁에 질려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들은 워스프 식 성공에서 탈출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음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눈 앞에 돈이 있었다
교육받은 계층의 성원들은 인간관계와 사회적 평들을 옹호하지만, 그들의 가치의 핵심은 성취에 있었다. 정보화 시대가 시작되면서 그에 따라 교육에 대한 보상이 더욱더 커져갔다. 대학 학위의 임금 가치가 15년 동안에 두 배가 된 것이다. 지적 자본에 대한 보상은 이처럼 늘어난 반면 육체적 자본에 대한 보상은 그렇지 않았다. 정보 시대는 전혀 새로운 직업군을 창출해 냈는데, 그 중에서 일부는 정말로 웃기는 것들로서 봉급만 보고는 무엇인지 도저히알 수가 없다. 정보시대는 기본적으로 교육에 대한 보상을 주었고, 교육받은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 사이의 소득 격차를 확대시켰다. 더욱이 이제는 중상류층이 중산층의 작은 일부에서 대개 높은 학위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는 뚜렷한 인구특성 그룹으로 성장한 것 이다.교육받은 엘리트의 구성원들은 먼저 돈 자체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함을 알게 되었다. 돈은 혼자서 흘러 들어오고 흘러나간다. 그래서 얼마 후에는 그 모든 썰물과 밀물의 와중에서 여전히 떠 있는 사회적 성취의 척도가 된다.
-풍요로움의 걱정
교육받은 계층의 승인을 얻으려는 사람들은 풍요로움에 수반되는 걱정거리를 안아야 한다. 자신들의 풍요로움과 자존심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자신들의 성공과 영적인 측면, 엘리트란 지위와 박애주의의 이상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그들 중 깨인 사람들 은 빈부의 격차를 우려하기도 한다. 그들은 엘리트에 반대하면서 자란 엘리트들이다. 그들은 풍요로우면서도 물질주의에 반대한다. 그들은 무언가를 팔면서 삶을 영위할 수도 있지만 자신들이 팔리는 것은 싫어한다. 본능적으로 반 기득권 적이지만 이제는 자신들이 새로운 기득권계층이 되었음을 감지하고 있다. 이러한 그들의 가장 큰 고민은 세속적인 성공과 내적인 덕목사이의 갈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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