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쿠퍼의 고난의 영웅들 독후감
쿠퍼는 1731년에 약 천5백 명 정도의 주민이 사는 런던 부근의 작은 마을인 그레이트 버컴스테드에서 마을 교회의 교구 목사이자 조지 2세의 궁정 목사 가운데 하나인 아버지를 둔 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6세 때 어머니의 죽음으로 아버지에 의해 기숙학교에 보내어 지는데 이것의 그의 인생에 있어서는 가장 비극적인 실수가 된다.
1749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법률가를 만들려는 아버지의 일방적인 계획으로 1752년 처음으로 심각한 우울증에 걸리게 되었으나 조지 허버트의 시에서 도움을 받아 우울증을 극복했다. 1759년 쿠퍼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런던의 파산 선고위원으로 임명이 된다. 또 4년 후에 의회 서기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지만 인사 청문회를 조건으로 성립된 이것이 쿠퍼를 몇 번의 자살로 이끌게 되는 심리적 압박을 주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11살 때 읽은 자살론을 기억하고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하게 되고 청문회를 취소한다.
1763년 12월에 수용된 세인트 올번스 정신병원에서 복음주의적이고 하나님과 복음을 사랑하는 코튼 박사를 만나게 되고 소망을 얻게 된다.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벤치에서 발견한 성경책 그리고 펼쳐진 곳은 로마서 3장25절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라는 구절이었다. 그리고 회심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삶은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1765년 6월 쿠퍼는 세인트 올번스 병원을 떠나 그녀가 떠나는 날까지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했던 언윈의 집으로 이사를 하며, 이곳에서 평생의 친구이자 동역자와 같은 뉴턴을 만나게 된다. 쿠퍼가 우울하고 은둔적인 기질이 있음을 발견하고 심방 사역이 있을 때마다 가능한 한 쿠퍼를 함께 데리고 다녔다. 같이 다니면서 쿠퍼의 시적인 재능을 알게 되고 이를 찬송가를 만드는 일에 동참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한다. 이것이 쿠퍼가 찬송가를 69곡이나 쓰게 되었고 이는 1779년에 출판되었다.
그러나 10년 마다 재현되는 신경쇠약으로 인한 악몽을 갖게 된다. 또다시 쿠퍼는 몇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고 하나님은 그 때마다 섭리로 그의 자살을 막았다. 그리고 신경쇠약을 용하게 피한 결과 풍성한 시작(詩作)을 갖추게 되었다.
이 때 뉴턴은 휴가까지 포기하고 쿠퍼의 곁을 지켜준 뉴턴의 보살핌은 이 시대 목회자가 가져야 할 덕목 중 하나이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찾아오는 시련과 고통을 헤쳐 나갈 때 또 다른 풍요로움을 갖게 되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1790년부터 1796년까지 메리를 죽어가는 어머니를 돌보듯이 극진히 섬기며 인간적인 면을 보여 준다. 이는 뉴턴과 메리의 헌신으로 변화시켰다고 본다. 포기하지 말고 계속 섬겨야 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쿠퍼의 우울증의 한 요인이 출생과 가정의 요인들이 비록 불가항력적인 면도 있지만 쿠퍼의 시를 통해서 아버지의 역할을 그리워하는 모습 속에서 부모로서의 역할의 중요성을 다시 느껴본다.
목회자를 많은 성도의 영적인 아버지라고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빨리 느끼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것이 채워지지 않을 때 인생의 많은 시간을 절망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살았던 쿠퍼는 남이 아닌 바로 내가 품어야 하는 성도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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