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정치와 그 맥을 같이한다는 주장에 반기를 들고 정치와 분리 될 때 진정한 예술이 탄생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예술이 정치적 색을 띠면 부정적인 입장에 서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그동안 정치와 예술의 관계가 불편하고 기피하고 싶은 종속관계였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예술의 개념이 도입되었을 때 미술을 비롯한 모든 예술이 처음부터 국가 통제에 의해 확립되었다 (빅토리아D.알렉산더)
는 점에 착안하면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동안 예술의 어용을 통해 정치적 신념이 무의식적으로 거부감 없이 전달되었다. 이러한 종속관계, 정치에 의해 어용되는 예술의 모습은 현존하고 있다.
1. 글쓴이가 바그너의 오페라에 매혹되어 있으면서도 고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야기해보자.
글쓴이는 ‘작품이 높은 예술의 향기를 가지고 있으면 정치적 신념과 관계없이 받아 들여야 한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글쓴이는 바그너의 오페라가 청중에게 무의식적으로 편파적인 반유대적 가치를 심어준다고 생각하였다. 그 한 예로 바그너의 오페라 에서는 그리스도인이자 독일인인 파르지팔의 면모와, 그에 반해 신뢰를 주지 못하는 유대인을 대조시킴으로서 전자를 한층 더 긍정적으로 부각시켜준다. 이러한 반유대적 감정을 담은 바그너의 음악이 국제적, 역사적 범죄자인 히틀러에 의해 정치적으로 어용된 것이 글쓴이로 하여금 더한 반감을 가지게 한 요소이다. 결국 글쓴이는 바그너가 지녔던 정치적 색채를 꺼렸던 것일 뿐, 작품의 예술성은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 글에서 글쓴이는 바그너의 공연에 매혹 당했다. 그것은 음악적인 기법에서 기인한 것으로, 바그너의 음악이 가진 “무한선율”의 기법은 청중을 매혹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그 이면에 청중으로 하여금 음악에 그대로 몸을 맡겨 비판의식을 가로막는 위험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처음에는 따분하고 피로한 면도 있지만 일단 그 무한의 물결에 몸을 맡기면 불가해한 관능과 고양감에 잠긴다고 글쓴이는 말한다. 바그너는 의도적으로 이런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감각의 마비가 관객의 감성에 가져오는 효과까지 계산해 들어간 것이다.
즉, 무한선율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첫째, 생각을 중단키고 둘째, 신경을 끊고 때려죽이고 천둥과 번개를 이용해야 하며, 셋째 비현실적인 무한을 길게 늘어놓고 위대한 상징들로 가득 채워 (박홍규 저)
청중이 몸을 물결의 너울거림에 맡기게 하는 것이다. 개인의 취향이나 취미, 의심이나 비판, 위화감이나 저항 등의 감정을 배제하고 몰주체 몰아의 경지로 나아가게 만드는 바그너의 기법을 통해 그의 작품이 파시즘적, 반유대적 색채와 맥락을 같이 한다는 점에 대해 글쓴이는 경계심을 가지고 있다.
2. 한국 근·현대사에서도 일제나 독재정권에 야합했다는 평가를 받는 예술가들이 있다. 각자의 영역에서 이러한 경력이 문제되면서 동시에 예술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예술가들이 누가 있는지 조사해보자 반대로 소신 있는 정치적 입장을 견지하여 높은 평가를 받지만 작품에 대한 평가에는 논란이 있는 예술가들에 대해서도 조사하여 발표해보자.
우리가 정의한 ‘정치적’이라는 것은 일반 사람들이 정부나 정치에 영향을 미치거나 지지하는 일체의 행동 (서용석 논문)
이다. 그럼 이 정의 하에서 그럼 2번 문제를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강점기 시기 일제의 독재정권에 야합한 예술가들이 있다. 이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정치적 행위 때문에 경력이 문제시되고 많은 이들의 지탄을 받고 있지만 그 작품의 예술성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 예로 서정주를 들 수 있는데 그는 일제 말기, 일제에 대한 찬양과 황국 신민화 정책의 선전에 열과 성을 다했으며 개인의 영달과 출세를 위해 조국을 배신하고 민족을 파는 친일, 매국행위를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 속 예술성은 매우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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