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합성 완전 영화의 기술적 이상과 모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사실이라고 믿는다. 본다는 것, 보이는 것에 대한 경고는 회화기술의 역사에서도 발견된다. 레지스 드브레는 살아 있던 사람이 사라지는 사람이 사라지는 부재의 공간, 그 부재의 공포를 견디기 위해 이미지가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서구 예술사 전반을 지배했던 환영주의에 대한 집착은 19세기에 발명된 사진이라는 기술 덕분에 미술에서 사진의 영역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사진 기술 덕분에 예술사는 입체파와 야수파를 기록에 첨부할 수 있게 되었다.
사진 = 미술의 유사성의 집념으로부터 해방시키다.
영화 = 19세기 사진이 확보했던 사실적 재현과 인증 작용의 개념에서 발전된 시각 매체 기술이다.
최초의 영화 상영과 관련된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들은 영사된 이미지를 실제와 구분하지 못한 관객들의 “진짜 같은” 체험에 대한 간증과 다를 바 없다. 관객들은 스크린에 투사된 기차가 점점 더 확대되는 지각적 체험을 기차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경험적 사실과 혼동했다. “진짜”는 지각의 사실성을 의미하지 진짜 기차가 다가왔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주목해야 할 것은 “진짜”가 아니라, “것처럼”이라는 부사라는 뜻이다. “진짜 같은” 에 대한 열광은 20세기의 예술이 그토록 내파하고자 했던 환영주의로의 귀환을 연상케 한다.
원본이 불확실한 감각적 체험에 대해 “사실성”을 평가하고, 기술적 완성도로 측정되어야 할 디지털 합성에 대한 감탄이 새로운 관람행위와 혼동되는 21세기의 유령은 이제 정책적 지원의 대상으로 전경화되고 있다. 입체영화와 환영은 주변이 아닌 중심의 논리이다. 혼란스러운 유령의 도래 이면에는 회화와 영화의 발전 과정에서 끊임없이 논의되어 왔던 시각적 사실성과 진리의 문제가 놓여 있다. 그리고 이는 한편 회화와 과학주의의 영향 아래 새롭게 대두되었던 문학에서의 사실주의의 논쟁과도 결부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3D와 사실성 논쟁이 단순히 산업적 차원으로 환산될 수 있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의 재현과 관련 있다는 이야기이다.
- 앙드레 바쟁이 말하는 완전영화는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영화를 현실 그 자체의 수준까지 끌어 올릴 것이라는 믿음을 반영
→ 인간이 실제 생활에서 느끼는 감각적 사실성에 가장 가깝게 조작된 시각적 이미지
라는 작품은 사실적 재현과 감각적 몰입에 대한 열망은 사실, 종이 만화를 영화화 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추구했던 상상의 실현과 관계가 깊다.
영화 은 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환상”을 실제적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하기 위해서 최첨단의 테크놀로지를 동원한다. 여기서 슈퍼맨의 비행은 지각적 사실일 뿐 경험적 진실은 아니다.
2. 사실감과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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