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육식의 종말 독후감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알면 독이 된다’는 속담이 있듯이,몰랐으면 참으로 속편할 일들이 많은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역시 그랬다. 소들만이 문제가 아니다. 엑셀이나 콘-아그라에서 수출하는 소만 먹지 않아야 할 것이 아니다. 돼지, 닭, 오리도 먹어선 안되며, 몬싼토나 듀폰, 다우, 아그레보와 같은 거대 기업들이 수출하는 작물도 먹어선 안된다. 이 같은 기업들은 노동자들과 전 지구에 대해 철저한 착취와 탄압을 통해 그들의 발판을 만들어냈다. 그 것들은 비단 식료품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화라는 명명아래, 그 모든 것을 짓밟고 있다. 우리들은 알아야만 한다.그러한 국가-기업의 세계화라는것은 결국 우리 자신들에게 똑같은 비참함과 똑같은 절망감만을안겨 줄 것이라는 것 말이다. 단지 소를 먹지 않아야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총체적인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이 책은 나에게 또다른 예 를 제공해 주었고, 나의 마음에 있는 응어리를 더욱 자극시켰다. 그 응어리는 브라질 수액 채취업자 치코 멘데즈의 비극적 죽음이며 버팔로들의 피들이며 더 나아가 세계-제국들이 짓밟았던 민중들의 눈물이다.그런 식으로 확장했던 전지구적 거대기업이 갖는 막대한 부와 권력, 그리고 각 대기업들간의 효율적인 단합들을 볼 수 있던 것이 어디 한 두번 뿐이었던가. 그들의 간사한 행위를 모르겠는가. 유럽 정부는 소 한 마리당 하루에 2.5$의 보조금을 준다. 이에 반해 전세계 어린이의 과반수 이상이 하루에 2$에도 못 미치는 돈으로 살아가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정말 나는 이런 세상을 모르고 살았으면 하는 후회를 하곤 한다. 차라리 그냥 방에 틀어박혀 작곡만 하다가 죽는 것을 꿈꾸기도 했다. "나의 의식 구조"에서 썼듯이 허무주의에 빠졌을 때도 있었다. 3년전, 하워드 진의 오만한 제국이란 책을 읽었을 때에 받았던 충격을 기억한다. 또한 촘스키나 네그리, 윌러스틴등의 저서를 읽고 느꼈던 슬픔들도 기억한다. 나는 소에 국한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동떨어진 이야기도 아니다. 육식의 종말의 저자, 제레미 러프킨도 그 이야기만을 주장하진 않을 것이다(그의 다양한 제목의 책만 보더라도 말이다). 사실 현실 고발만으로고 충분하다. 대기업과 국가의 긴밀한 공조, 억압을 받아들이는 노동자들, 쫓겨나는 기존의 낙농인들, 불편하게 사는 소때들. 파괴되는 환경들. 뚱뚱한 우리들. 이것들은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다. 한 개인은 이 모든 것들을 도저히 바꿀 수 없다. 견고함을 최우선으로 삼는 국가들과 이익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대기업들, 무너지는 소매업자들, 경제와 스포츠-예술의 자본주의적 접목, 우리가 먹는 음식들에 대한 불신감, 환경오염계층간 벌어지는 갈등, 종교-민족-종족간의 전쟁들, 에너지와 정보습득의 불균등... 그 모든 것들이 나의 숨통을 막는다. (단지 예술가의 감수성 때문인가?) 하지만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보거나, 멕시코 치아빠쓰 투쟁들, 반세계화 포럼, 국제 소농조합 비아 캄뻬씨나 운동, 브라질 MST (토지 없는 농민 운동), 미국내의 포인트 아레나 결의서 통과 등을 보면서 아직도 희망이 있구나 하고 생각한다. 제레미 러프킨의 주장도 충분히 동의는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운동들처럼 광범위한 연합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또한그 운동들도서로 연합하여 거대한 권력 대항체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안토니오 네그리는 아우토노미아운동을 주장한다. 우리는 새로운 제국(소때의 제국도 하나의 일종이겠다.) 에 살고 있다. 그것은 기존의 제국이란 개념이 아니라, 생체권력의 생체정치화를 뜻한다. 그것은 기존 권력의 무자비성과는 달리, 권력의 억압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일상이 되어 버리는 것을 뜻한다.즉, 우리가 억압을 억압으로 인식하지도 못하게 되는 것 (여기서 우리는 빌헬름 라이히의 말에 귀를 귀울여야만 한다. -왜 민중은 자기 자신을억압하는 것을 욕망하는가?)그 것을 노리는 새로운 제국.또한 그 제국 안에서 하나의 작은 재료들 중 하나 - 소때와 그들을 키우는 제국적 기업들.. 우리들은 이 현실에 대해 새로운 인식과 함께 거대 기업들과 국가들에게 대항하는 하나의 자율체 조직 -아우토노미아- 이 필요하다. 그 자율체 조직은 이데올로기를 넘어서서 개별자들이 차이를 인식하면서 (차이와 차별은 엄연히 다르다.) 서로 새로운 것을 구성해 나가려는 역능을 가지고 만들어 가는 조직(구성체) 이다. 이 조직의전방위적인 권력에 대한 공격과 함께 거대 권력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야 소들도 자유롭게 풀을 뜯을 수 있고, 아이들도 2$ 이상의 돈으로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소(정치 경제분야)에 국한된 영향이 아니라 전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조직운동이지만. 소를 바라보는, 아니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생각은 이미 프란시스 베이컨 (아일랜드 화가) 의 1954년작 에서 잘나타나 있다. 또한 그도 내 생각에 대해 몇 십년 앞서 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