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의 문 앞에서
“죽음은 단지 이 생애를 마감하고 고통과 번뇌가 사라진 곳으로 옮겨가는 일일 뿐이에요. 이 사실은 상실과 슬픔에 잠긴 나에게, 내가 소중히 여긴 모든 사람들이 괜찮을 거라는 걸 가르쳐주고 날 안심하게 만들어주지요. 나는 그들을 이곳을 떠난 이후에도 계속 돌봐줄 거예요. 그래서 그들과 함께 웃고 미소 지을 거예요. 만일 그들이 사후의 삶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난 그들에게 재미있는 표정을 지으며 말할 거예요. ‘하하, 우린 이곳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니…… 괜찮아’라고요. ”
1. 신은 감당할 만큼만 고통을 준다.
앞일을 예감한다는 것은 인간은 자신이 필연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자각하는 유일한 종이다.
상실의 예감은 우리 마음속에서는 ‘끝의 시작’이다. 이제 우리는 두개의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안전한 세계와, 죽을지도 모르는 불안전한 세계가 그것이다.
누군가가 죽은 후에만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죽기 전에도 슬퍼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상실의 예감은 그 슬픔의 과정을 더 쉽게 또는 더 짧게 해줄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상실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전에 미리 슬퍼한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죄책감이 찾아올 수도 있다.
상실의 예감에서 오는 슬픔은 죽은 이후에 느끼는 슬픔과는 별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상실의 예감은 앞으로 마주해야 할 고통스런 과정의 전주곡이며, 궁극적으로는 치유되어야 할 이중의 슬픔이다.
2. 슬픔에게 자리를 내어주라
분노가 솟구치면 소리 내어 분노하라. 판단하지 말고, 의미조차 찾으려 하지 않고, 오직 분노 그대로를 느껴라. 어차피 삶은 불공평하다. 죽음 역시도 불공평하다. 그러니 이토록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상실 앞에서, 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으랴.

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