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 본질을 회복하는 하이 태그 예배 독후감
프레젠테이션 기술은 예배를 좋게 만들 수도 있으며 동시에 나쁘게 만들 수도 있다. 프레젠테이션 기술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열쇠는, 기술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더 값진 목적을 위해 기술을 예배에 잘 이용하는 데 있다. 기술을 위해 기술을 이용하지 말고 훌륭한 예배를 돕는 목적으로 사용하야 하는 것이다.
예배에서 프레젠테이션 기술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문제 이전에 우리는 기술과 예배에 관한 우리의 혼란을 해결해야 한다. 기술과 예배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기술에는 인간의 마음과 정신으로 하여금 통제를 추구하게 하고, 그저 인간적 욕구에 맞는 예배를 만들어 내게 하는 경향이 있다.
프레젠테이션 기술은 설교의 요점을 강조할 수도 있고 특별한 예전 행위들에 주의를 기울이게 할 수도 있다. 그 기술을 찬양의 분위기를 돋울 수도 있고 값진 예전 예술을 제공하며, 내가 이 책의 뒷부분에서 논할 다른 많은 유익들을 제공할 수 있다.
예배에서 프레젠테이션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전직으로 거부하는 것은 어리석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소피스트들, 즉 기술이 지닌 힘 때문에 이를 숭상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예배에서 기술을 사용하는 방법을 지시하도록 허용하는 것 역시 잘못된 일이다. ‘하이테크 예배’에 대한 유토피아적인 혹은 디스토피아적인 주장에 대해 먼저 우리는 이에 대해 방어해야 한다. 그런 다음 하나님이 드러내신 창조 세계의 충만함 속에서 예배의 목적을 재발견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북미에서 부적합하게 ‘기술화된’ 예배들을 많이 목격하고 있다. 인기 설교자들과 화려한 예배 쇼는 이러한 문제를 더 확실하게 드러내 주는 예다. 예배는 우리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께 주의 기울이게 해야 한다. 예전 행위의 의도는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는 것이다. 어떤 작가는 “불신 사회속에서 교회로 존재하기라는 난해한 문제에 대해 교회는 기술이 손쉬운 해결책을 제공해 주리라는 미신적 신앙을 포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조화로운 예배에는 실제적, 예술적, 심미적, 신학적, 예전적, 건축적 절기적인 차원을 포함해 오늘날에도 중요한 차원들이 많이 들어 있다. 만일 우리가 은혜로운 대화 속에서 하나님 및 이웃과 친밀해지기를 갈망한다면, 프레젠테이션 기술이 이러한 친밀감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고려해야 한다.
예배에서 프레젠테이션 기술을 사용할 때 우리의 청지기직을 소홀히 하는 어리석음을 피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지혜를 기르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러한 지혜는 찾기 어렵다. 우선 관련 기술이 상대적으로 새로운 것들이다. 어떻게 그것들을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확신을 가질 만큼의 경험이 아직 없다. 또 다른 문제는 그러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시장이 아직 많지 않다는 것이다. 교회들은 지혜로운 프레젠테이션 기술 사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보다 그것들의 필요성이나 유익에 대해서 떠들기를 훨씬 좋아한다. 무엇보다도 교회 바깥의 더 넓은 사회는 기술이 문제를 제대로 규정할 수 없을지라도 그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믿는다.
더 어리석은 것은, 비록 과장된 면이 있을지라도 잠재적으로 타당성이 있는 온건한 예배 기술 비평가들에게 조차 귀 기울이지 않고 그들을 너무나 쉽게 무시해 버린다는 것이다. 지혜를 얻는다는 것은, 선하고 올바르며 아름답고 참된-즉 모든 면에서 적합한-예배 행위를 향한 오랜 순종을 요구하는 비효율적인 과정이다.
그러한 어리석음이 하이테크 예배에서 주객전도의 상황을 불러일으킬 것인지의 여부는, 전적으로 누가 담당자가 되는가에 달려 있다.
교회가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졌다 하더라도 기술에 대한 의욕이 교회 리더십의 권위를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 정보화 시대에는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과 정보를 다루는 독립적인 전문가들이 우리 삶의 전 영역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오늘날 사회에서 우리는 더 큰 그림, 즉 예배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술 전문가들에게 너무 빨리 권위를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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