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죽음의 밥상2
농민들은 병충해를 예방한다는 구실로 무지 막지한 농약을 농작물에 뿌려 댓는데, 가장 값싸고 효과가 좋은 농약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했다. 당시에 농약이라는 것도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정밀한 안전 검사를 거치지 않고 시중에 나온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농민들의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물론 잔류물이 농작물에 그대로 축척되어 최종 소비자들의 건강까지 위협할 수준이었다.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당시에 뿌려대던 DDT 나 BHC가 아직도 인체 내에서 발견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은 이를 잘 반증한다. 물론 방금 소가 뜯어 먹은 농작물은 낮에 뿌려댄 농약이 그대로 묻어 있었을 것이고, 궁극적으로 사람의 체내로 들어가 잔류하게 되므로써 부작용을 준비하기에 이른다.
당시에 소는 농민들에게 혹사 당했다. 코를 뚫어 말 잘 듣는 완벽한 농사도구로 활용되었으며 온갖 일에 동원되었다. 힘을 좋게 한다는 이유로 뱀을 먹이는 일은 다반사였다. 소가 초식동물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 때 깨달았다. 또 제법 비싼 가격에 팔리던 송아지를 낳아 농촌 경제에 이바지 하기도 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소가 아니었다면, 농촌에서는 자녀들을 대학에 보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소가 가정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절대적이었다. 물론 임신 가능성이 없어지면, 소는 비극적이었던 자신의 삶을 마감하고 도축장으로 팔려나갔다. 당시에 몸무게로 소의 가격을 책정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일부 불량한 농민들은 소에게 소금과 물을 엄청나게 먹여 몸무게를 어거지로 높였다.
가축들의 고난은 소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농촌의 겨울은 개를 잡아 먹는 풍경이 어렵지 않게 목격되곤 했는데, 목메달고, 고기 육질을 연하게 한다는 이유로 야구 방망이로 두들겨 패서 개를 잡았다. 그리고 털을 꼬실린 다음 칼로 목과 다리를 자르고 일명 요리라는 것을 시작한다. 한 번은 완전히 불로 털을 꼬실렸는데, 갑자기 개가 도망가버려 동네 사람들이 쫓아가는 웃지 못할 진풍경도 연출되었다. 당시에는 가축이 아니고서는 농촌은 생존할 수 없었으며, 동물에 대한 어떤 윤리도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오로지 부려먹고, 쓸모 없어진 가축은 팔아서 학비에 보태며, 그나마도 불가능한 가축은 잡아 먹을 정도로 활용되어지던 시절이었다. 동물의 죽음 앞에서 윤리 따위를 따지는 것은 사치나 다름 없었다.
자... 이쯤되면, 이 책의 저자인 피터 싱어가 말하는 공장식 농장에서 벌어지는 비윤리적인 만행은 그다지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당시에도 닭들이 서로를 공격한다는 이유로 부리가 성한 닭은 거의 없었으며, 마리 수가 많아지면서 선진 영농이라는 이름으로 닭장은 공장식으로 개조하는 농가들이 늘어났다. 오히려 농민들에게는 이러한 방법들이 앞으로 농촌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 처럼 느껴졌으며, 방목되는 가축들은 이웃들에게 상당한 피해를 주곤 했다. 농촌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분명해 보였다. 그것은 바로 규모의 경제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공장식 농장의 확대에 있는 듯 했다.
모든 것이 앞만 보고 달리던 시절이었다. 전염병에 필요하다면 항생제는 이유를 불문하고 농민들에게 인기를 얻었으며, 그에 대한 부작용을 논할 정도로 농민들의 관련 지식은 충분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갚아야 할 영농 자금과 이자가 늘어가고 있었으며, 대학에 보내야 할 아이들이 많았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서서히 외국에서 값싼 농산물들이 들어오면서 수지 타산도 맞지 않게 되었다. 이대로 가다간 모든 것이 끝장날 판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소비자는 자신이 먹고 있는 식품들이 과연 어떤 경로를 통해서 자신의 식탁에 오르는지를 알고자 했다. 유기농은 과연 안전한가? 농약 잔류물은 얼마나 되는가? 값을 더 받기 위해 동물들의 자연적인 성장 과정을 거스르는 부정행위는 이루어지지 않는가? 많은 약품과 항생제는 어떤 부작용을 낳는가? 유통과정에의 식품 안전은 과연 믿을 만한가? 모든 것에 우선해서 과연 동물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사육되고 살해되는가는 지금 입으로 밀어 넣는 고기를 생각하는 순간 모든 이들에게 관심을 촉발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피터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 인간이 먹기 위해 죽여야만 하는 동물들을 윤리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또 그것들이 사육되고 도축되는 과정에서의 잔인하고도 비윤리적인 면을 개선해야 될 필요성이 있다. 바로 인간의 식욕만을 생각하는 기존의 식생활에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한 것이다. 물론 소비자가 갑짜기 똑똑해지거나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았던 윤리가 생겨 난 것은 아니다. 또 과거의 동물들이 자연 상태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유토피아적인 삶을 인간이 느닷없이 회방 놓은 것도 아니다. 동물들은 늘 야생에서 배고품과 적으로부터 공격에 노출되었으며 가축으로 길러지면서는 인간들에게 혹사당했다. 또 간혹 인간들을 물리적, 생물학적으로 공격했으며 다양한 사고와 질병 등을 퍼트리는 원인이 되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이 복잡한 문제들을 일거에 해결할 대안은 존재하는 것일까? 비극이지만 그런 해결책은 아직은 없어 보인다. 다만 어디에서 균형을 잡을 것인지를 두고 많은 논란이 있을 뿐이다. 농산물 시장 개방을 두고 벌어지는 이해 관계자들의 첨예한 대립은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에만 국한 된 문제가 아니다. 몇몇 논쟁은 과장되거나 축소되면서 그 진실이 왜곡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소비자는 자기 한 몸 살아가기에도 바빠 먹는 것 조차도 모든 것을 꼼꼼히 살피고 결정할 여유가 없다. 사실 공개되는 정보 자체가 너무 빈약하기 짝이 없다.
다소 자극적인 형태로 붙여진 제목인 [죽음의 밥상]은 분명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두 저자는 직접 도살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로 현장을 밀착 취재했으며, 상당수의 목장과 동물 사육장을 방문해 현실을 피부로 느끼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또 각 가정의 먹거리 쇼핑을 분석하거나 인터뷰 함으로써 최종 소비자의 실태와 세계의 식품 관련 산업 및 무역 구조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가 뒷바침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로서 오늘날 우리가 가진 막연한 먹거리 문화에 대한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윤리와 패러다임은 이미 그 이론적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최종적으로 관련 업계의 자구적인 노력과 관계 당국의 끝없는 감시와 지도, 그리고 현명한 소비자의 선택이 하나가 될 때 저자가 지적한 윤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또 그러므로써 우리의 식탁도 그만큼 더 안전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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