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장르 비평 블랙펄 해적선의 이미지
소위 말하는 장르로서의 ‘판타지’영화들 뿐만 아니라, 모든 영화들의 바탕은 판타지적 체험이다. 자신이 경험할 수 없는 영화적 세계를 현실을 넘어 상상으로서 구성해나가는 것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모든 영화가 판타지영화라고 볼 수 있지만 장르로서 분류된 ‘판타지영화’로서의 특징은 명확히 구분될 수 있다.
‘판타지영화’에서 가장 크게 도드라지는 부분은 ‘이미지’이다. 말그대로 현실에서 벌어질 수 없는 상상 속의 물체들이 구체적인 이미지로서 표현 되는 것이다. 의 호그와트, 의 공룡, 의 요정, 액션히어로 물의 영웅들, 의 바다괴물 등 현실에서,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영화의 주인이 되며 우리들의 상상과 비현실의 욕구를 끄집어내는 데에 중점을 둔다. 이야기와 화법의 방향은 부차적인 것이며 배경과 인물의 도상이 중심이 된다. 만약 크라켄, 블랙펄, 칼립소, 데비존스가 담긴 이 전형적인 장르적 이야기를 가지 않고 라스폰트리에의 와 같은 텍스트와 화법으로 표현되었다면 이 영화는 ‘판타지영화’로서 명명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판타지영화’로서 구분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미지’의 도상이 차지하는 지점을 확실히 강조하기 위해 이야기를 도구로서 사용하는 것이다.
해적선은 존재했었고 존재한다. 바다위에 뜬 큰 배는 자동차를 타고 바닷가에 가면 쉽게 볼 수 있고, 탑승권을 구매해 탈 수도 있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배를 사서 바다를 떠도는 해적이 될 수도 있다. 만약, 에 크라켄과 데비존스, 칼립소, 저승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판타지영화가 될 수 없는 것일까, 개인적이지만 절대 개인적이지 않은 부분에서 이 영화의 가장 큰 판타지는 블랙펄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해서 해적선은 전혀 환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면 도대체 왜 블랙펄이라는 도상에서 판타지를 느끼는가.
체험, 우리는 자유로운 해적으로 자신의 해적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없다. 꽉 막힌 현대사회의 사람들은 일탈과 자유를 꿈꾼다는 진부한 얘기를 풀어갈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육체적인 반응에서부터 시작된다. 머릿속으로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닌 몸으로서, 감각으로서 영화를 체험하는 것이다. 이 단순하고 원초적인 감각의 힘이 판타지 장르의 도상이 가진 무한한 에너지가 된다.
잭 스패로우와 데비 존스, 이 두 이미지에서 보기에 잭은 현실적인 인물이고 데비 존스는 신화에 나오는 전형적인 괴물이다. 만약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 이 두 이미지를 보았을 때 어느 쪽을 판타지영화라고 인식할까, 혹은 어떤 이미지를 더 감각할까. 당연히 이 영화의 도상(icon)은 단지 현실적인 잭 스패로우와 블랙펄이다.
와 의 도상(icon)은 절대로 변이체나 마법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사람(우리)와 가깝고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인물들의 감성과 그 표정의 이미지가 이런 ‘판타지 영화’를 이끌어가는 대표성을 지닌다. 이 두 영화나 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모험’이고 이것은 자아의 동일화가 중심이다. 판타지적 체험의 방향은 관객들이 꿈꾸는 감성이자 무의식적인 감각이다.
장르의 범주에서 판타지는 현실 속에 없는 물체들이 영화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중심이 된다. 그러나 이것에서 더 중요한 것은 물리적 현상으로서 보이는 이미지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체험(모험)’이라는 감각에 있다. 그렇기에 는 판타지영화가 될 수 없고, 는 판타지영화로서 빛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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