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 평기 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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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화비 평기 사는 없다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사실 아직 이렇다할 비평에 대한 기술을 온전히 습득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마지막 레포트의 주제는 장르 영화에 관한 비평이였습니다.
강의시간에 교수님께서 기사도 문학에 대해 논하셨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이장르 영화비평을 위해 영화를 생각하던 중 그 말씀은 불현 듯 저에게 한 영화가 떠오르게 합니다. 또 이제는 기억 속에만 남은 배우의 작품이기도 합니다. 히스레저의 주연작이고, 2001년도에 제작된, 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영화를 비평하기 위해 다시금 영화를 돌려보며 너무나 즐거웠고 많은 힘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아직 어린아이 인 지, 여정이 아직도 너무나 즐겁고, 성장담이 저를 너무 사로잡습니다. 역시 기사도, 또 기사도 입니다. 조금은 낡은 교훈이지만, 이과제로 저는 을 택했습니다.
기사는 없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 없다는 말마따라 모든 예술 혹 사람은 100년전에도 지금도 대동소이 하다.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혹은 그 색깔도 마찬가지 이다. 고로 오롯이 변주만이 ‘창조’의 이름뒤에서 우리에게 창조주의 기쁨을 만끽하게 만들었다. 옛것이 없이 허공에서 무엇도 만들어 질 수 없었다. 여기 영화 도 바로 그런 면에서 크게 혜택을 누린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이영화의 배경은 중세이다. 그저그런 중세의 기사도 문학처럼, 여인을 사랑했고 운명을 바꾸고자 했으며, 또 도전하고 허무맹랑한 것들을 꿈꾸는 기사의 성장담이며 그의 여정을 쫓는 영화이다. 고리타분하면 백번은 고리타분했을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초입부터 우리를 ‘골’때리게 한다. 한 예시로 초입에 자신있게 깔리는 음악은 퀸의 ‘We Will Rock You’이다. 분명히 방금 막 웅장한 나레이션과 함께 숭고히 쓰러지는 기사들의 모습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20세기의 롹음악이 너무나도 뻔뻔히 등장해버리니, 이건 뭐 상상초월의 전개이다. 마치 이게 기사도에 대한 헌정 영화인 줄 알고 틀어버린 관객들에게 조소를 날린 꼴이다. (아니 기사도에 대한 헌정영화건 뭐건 중세라는 배경을 본 관객에게 말이다!) 이렇듯 영화의 전체 사운드트랙은 다 롹 혹은 비트가 빠른 전자음악들로 구성되있다. 이건 비단, 영화의 음악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융합이 아니다. 이런 시대적 퓨전은 영화 곳곳에 자리한다. 의상도 어딘가 모르게 현대적임을 느끼게끔 디자인 되있다. 심지어 말미에는 거의 티셔츠 같은 의상이 그냥 우후죽순 튀어나오는데 (요즈음에나 유행하는 시스루도 등장한다) 그것이 이미 그때는 이영화의 맛이 되버렸다. 즉 관객의 관용성 자체가 시작부터 넓어졌다는 것이다. 이건 영화에게 아주 유리한 입장을 쥐어준다. 어느정도의 기이함은 실수가 아닌 그자체의 색이 되어 세겨진다는 것이다. 촬영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이야기는 고전적이나 샷 디자인은 아주 세련됬다. 중반부에 윌리엄이 조슬링에게 구애하기 위해 다시 등장했을 때의 성당씬은 가히 인상적이다. 마치 연극무대에 모든것을 새워놓은 듯한 풀샷이 평면적으로만 무빙을 한다. 허나 이러한 촬영기법은 영화 몰입도를 전혀 방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프레임 속 철두철미하게 꽉차 있는 분위기들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이외에도 직부감, 안각, 고속촬영 등 여러 세련되고 실험적인 샷 디자인이 영화를 다채롭게 만드는 데 한몫한다. 자 그럼 이제는 이야기다 기사도 정신은 현대와 잘 섞여 만들어졌는가,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실제로 중세에 살아본 적 없어서인 지는 몰라도, 기사도 정신이라는 것 자체가 현세의 우리와 별반 다를게 없이 느껴진다. 오롯이 이영화에서 뿐만이 아니라 모든 고전 문학에서 나는 우리를 발견한다. 중세라는 상이한 배경은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이것을 우화처럼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와 같이 나는 에서도 나를 보았다. 애시당초 이야기라는 것은 이미 섞이고 섞인 것이라 퓨전이라는 단어가 걸맞아 보이지 않는다. 물론 헝태에 있어서 정석적인 서사나 실험적, 혹은 새로운 서사 방식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사람의 본질은 퓨전될 수 없다는 논리이다. 이미 사람은 날 때부터 퓨전인데 뭘!
그리고 이영화속 장르적 요소들은 어처구니 없이 개연성없이 연결되어 있지 않다. 한마디로 보고나서 가짜에 속은 기분은 없다는 것이다. 이따금 두시간이라는 러닝타임에 사족처럼 쓸모없는 과장이나 생략은 존재하나, 그정도는 바줄 수 있지 않겠나, 다 완벽히 궤를 맞춘것만이 좋은 예술은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그정도 허점은 이영화를 매운 살아있는 인물들이 달래준다. 인물들은 하나같이 선명하다. 허무맹랑하기 그지없는 기사 윌리엄과 그를 보좌하는 많은 인물들이 정밀하게 관계를 이루고있으며 그 색깔이 분명해 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물론 이역시도 고리타분한 방식의 인물구축들일 수 있겠지만, 굳이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아도 나는 이인물들이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사람 좋다는 것에 이유 붙이는 것은 쉬운일은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 두시간이라는 러닝타임 내내 비현실적인 일일지는 몰라도, 굳건히 진심을 지키는 윌리엄의 모습이 아직도 찡하다. 타고난 것은 중요하지 않다. 누구도 처음부터 기사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