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중국이라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밀접하게 이웃하고 있는 나라이면서 현재 또는 미래에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또 성장해 나갈 나라임이 분명하다. 중국은 막대한 인구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긍정적인 측면에서 개방 정책을 펴가며 놀라운 속도로 성장해가고 있어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는 중국의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 이에 중국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먼저 중국의 유구한 역사부터 알고자 한다. 여기 본문에서는 최 근대와 가까운 청대의 총괄적인 건국 과정과 그 외 정치, 문화 등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본문
명, 청 시대의 제국 질서 완성
명과 청은 근대 이전의 마지막 왕조들이다. 명은 이민족왕조인 원을 몰아내고 한족이 세운 나라이고 청은 명이 망한 뒤 중국 본토에 들어와 한족을 지배하게 된 만주족이 세운 나라이다.
청을 건국하게 되는 만주족은 비교적 간접적인 지배의 성격이 강했던 노아간 도지휘사사 휘하의 여진족 계통이었다. 여진족은 거주지역, 생활 환경에 따라서 해서海西 여진, 건주建州여진, 야인野人여진으로 구분 이중 농경생활에 익숙해져 있으며 명조와 일찍이 관계를 맺고 발전해왔던 건주여진이 청을 건국했다.
먼저 명나라는 이 여진족을 다스리기 위해 위소(명대의 병제로 군의 최대 단위)를 세웠고 건주 여진에 건주 좌위와 우위를 두었는데 청의 전신인 후금을 건국한 누르하치의 조상들이 건주좌위의 지휘사나 도독등의 명의 관리직에 있었던 여진족의 지배층이였다. 명군의 실수로 누르하치의 조부와 부친이 살해되자 이를 빌미로 군사를 일으켰고(1583) 흥경을 중심으로 만주족을 통일하며 지배권을 확립해나갔다. 이 과정에서 팔기제도를 정립해 나갔고 만주 문자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문자 창제는 일종의 민족적 자각의 표현이였다.
만주족을 통일한 누르하치는 북송을 멸망시키고 중국 화북지방을 지배한 여진족의 왕조였던 금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흥경에서 후금을 건국하고 연호를 천명이라했다. 후금 건국후 명과의 관계가 적대적으로 변하자 7대 한限을 구실로 명의 침략을 개시했다. 이로서 한인의 거주지인 요동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이후 누르하치는 1626년 명의 서양포에 사망하고 그 뒤를 이어 그의 아들인 홍타이지皇太極가 즉위하여 제 2의 한(汗)이라 칭하고 연호를 천총天聰이라 하였다. 홍타이지는 자신의 무력을 증강시키고 관제를 정비시키고 다른 실권자를 약화시켜 한汗의 지위를 격상시키며 자신의 권력또한 강화해나갔다. 즉 6부를 두었다. 동시에 통치기초 확보를 위해 한족이 많이 살고있는 요동지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만주인과 한족을 분리시키고, 한족 관료와 지식인을 이용했다.
이로서 후금은 배타적인 국수적인 만주족 국가라는 성격을 탈피 한족과 몽고족을 적극 포용하는 다민족 국가로서 군주 독재하의 관료국가체제를 이끌어 나갔다.
1635년 이듬해 국호를 청淸이라하고 연호를 숭덕崇德이라 고치고 심양을 도읍으로 정하여 성경盛京이라 했는데 그가 바로 청 태종이다.
신승하 「중국사」 대한 교과서
신성곤, 윤혜영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도서출판 서해 문집
김희영 「이야기 중국사」 청아 출판사
http://imdh.knu.ac.kr/debate/ryulso/wwwboard-3.0.1/data/sawe/china02.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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